호노카는 침대위에서 앉았다. 누웠다. 자리에서 일어 섰다를 반복하고 전화를 할까 말까 몇 번이나 고민 했다. 지금 하는 게 좋겠지. 음, 그럴 거야. 지금 밖에 없어. 몇 번이나 핸드폰을 만지고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 했다. 손에 들린 두 장의 티켓 부모님의 부탁으로 심부름을 갔다가 우연히 얻게 된 수족관 무료 입장권이다. 이걸 건네준 가게 분도 웃으며 호노카에게 데이트를 다녀오라고 말했다. 호노카는 손사래를 치며 그럴 사람이 없다고는 했다. 데이트를 갈사람 보다는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금발을 지니고 호수와도 같이 푸른 눈동자가 생각나는 호노카가 사랑하는 사람 호노카의 연인 아야세 에리. 티켓을 들고 방위로 올라온 호노카는 아까 전부터 몇 번이나 고민을 했다. 에리에게 데이트 신청..
“심심하다냐.”“집중해.” “아얏, 아프다냐.” 넓은 방안 원형 책상을 펼쳐 놓고 그 위에는 각종 문제집과 노트가 늘어져 있었다. 린은 방금 마키에게 맞은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졌다. 마키는 영 집중하지 못하는 린을 보며 말했다. “먼저 공부 하자고 한건 너잖아.” “그렇지만...심심한건 어쩔 수 없다냐.” 정말이지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다. 얼마 전 본 쪽지시험에서 아슬아슬한 점수를 받아. 선생님께 한 소리 듣고 시무룩 해졌으면서 변한 게 없다. 그 뒤에 공부를 하자냐. 라고 외쳤고, 마키에게 달라붙어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이렇게 집에까지 초대해 공부를 시작했는데 시계를 보니 고작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전 과목이 고루고루 약해서 일단 가장 약한 수학부터 봐주기로 했는데, 역..
“아, 정말이지 이렇게 보이는 곳에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앙칼진 니코의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매웠다. 에리는 고개를 숙이고 니코에게 미안하다고만 말 할 뿐이었다.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니코의 새하얀 목덜미에 붉게 올라온 이빨 자국을 가리키며 에리에게 화를 냈다. 이 상처는 에리의 버릇 중 하나였다. 절정에 이를 때가 되면, 항상 목덜미라던가 신체 부위를 물어 상처를 내고 만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회사 미팅이 있는 날이다. 침대에 눕기 전에도 몇 번이나 에리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달라고, 에리는 자신만만하게 알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목덜미에 남은 상처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으으, 미안해...니코.” “한 달 동안 에리랑은 손도 안 잡을 거야..
비 가 오는 날, 다 허물어져 가는 종이 상자 안에 있는 작은 아이, 주황색으로 빛나는 털은 물에 젖어 색을 잃어 버렸고, 꼬리와 귀는 기운 없이 쳐져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상자 안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저 추위에 떨고 있는 시선을 돌려 버린다면 곧 사그라들어 버릴 것 같은 작은 생명의 불꽃을 무시 할 수 는 없었다. 정말이지 모질지 못하다. 겉옷으로 작은 아이를 감싸 조금이라도 날아 들어오는 비바람을 막아주려 했다. 으으응, 자그마한 신음소리가 옷가지 안에서 새어나왔다. 힘 없는 저항이 느껴졌다. “조금만 참아.” 말을 알아들었는지, 신음소리와 저항이 줄어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바람이 거세졌다. 정말로 제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날이네, 하늘을 향한 빈정거림을 듣기라도 한걸까, 빗방울이 더욱..
핸드폰 진동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누구일까 생각 할 필요도 없었다. 화면에는 에릿치~♡ 라는 문자가 떠올랐다. 역시나 에리다. 아마도 오늘 만나는 것 때문에 전화를 한 것 이 분명 하다. “와 전화했나?” “글쎄? 노조미의 목소리를 좀 더 빨리 듣고 싶어서 일까.” “역시 말은 번지르르하구마.” “그래, 조금있다가 만나.” “에릿치나 늦지말레이.” 통화를 끝내고, 나갈 준비를 마저 한다. 어떤 옷이 좋을 까, 한참을 고민하다. 에리가 어울린다고 해준 보라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첫 데이트 때 입었던 옷, 에리가 몇 번이나 예쁘다고 해준 옷이기에 가장 마음에든 옷 중 하나이다. 역시 이게 좋겠다. 옷을 갈아입고 위에 받쳐 입을 코트를 꺼낸다. 콧노래를 부르며, 데이트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데이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