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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에리] 커피-1

Aeon16 2016. 12. 28. 21:43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은 거리. 멀어져 가는 저녁노을에 바닥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가고 건물에는 불이 하나 둘씩 켜져 어둠을 밝힐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저녁 장사를 가게들은 하나둘 씩 문을 열었다. 길거리를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 모두 일과에 지쳐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준에 깊은 한 숨을 쉬며 걷고 있는 한사람이 있었다. 얼굴에는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었으며, 걸음 또한 무겁게 느껴졌다.

 

으아, 힘들어.”

 

호노카는 지친 듯 중얼거리며 길을 걸었다. 학과를 잘못 선택한 걸까, 가업을 있기 위해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 피나는 노력 끝에 대학 진학을 성공했지만 가끔 이렇게 후회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끝없이 쏟아지는 과제에 때때로 이렇게 늦게 집에 돌아 갈 때 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한 학기만 쉬자고 호노카를 끝없이 유혹했다. 으으, 쉬고 싶다. 다시 한 숨이 절로 나온다. 한 숨을 쉬면 복이 나간다고 하지만 호노카에게는 더 이상 나갈 복이 없을 것 같았다.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져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우미쨩이라 크게 적힌 문구가 올라왔고 호노카는 잔뜩 긴장을 했다. 이대로 전화를 안 받는다면 집에 가서 더욱 크게 혼이 날게 분명하기에 호노카는 용기를 내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우미쨩?”

어딘가요, 호노카?”
나긋나긋한 우미의 말투에 호노카는 살짝 긴장을 놓을 뻔 했지만 여기서 실수 하면 안 된다.

 

, 오늘 과제가 많아서 늦게 집에 갈 것 같아. , 그래도 걱정 마 금방 도착하니깐.”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호노카. 걱정 하지 않았습니까.”
미안, 연락 하는 걸 깜빡해서. 화 안 났지?”

호노카도 성인인걸요. 제가 호노카의 어머니도 아니고 이런 걸로 일일이 화내지 않습니다. 참 저녁 먹기 전까지는 오는 거죠? 오늘 저녁은 호노카가 아주 좋아하는 피망으로 만든.”
, !! 우미쨩 역시 화났잖아!!!”

안 났습니다. 어서 와서 저녁 식사를 해요. 호노카.”

 

끊어지는 전화 호노카는 한 층 더 피로해진 몸을 이끌고 집에 가야만 했다. 양 발에는 족쇄가 차인 것처럼 무거웠고 바닥에 이끌리는 쇠사슬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가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가 있다. 몇 번 이나 스스로를 달래며 걸음을 걷던 도중 호노카의 걸음은 문뜩 멈춰버렸다.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부드러우며 고소한 향기가 호노카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거무칙칙하게 만 보이던 회색 거리 사이로 색을 지니고 있는 향기가 호노카를 붙잡는다. 호노카는 코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몸을 돌려 향기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무겁게 만 느껴졌던 다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향기를 쫓아 움직이기로 했다. 이 향기는 많이 맡아본 향기다. 하지만 어딘가가 다르다. 기억의 너머에 있는 향과 몇 번을 비교해 보며 계속 해서 걸음을 재촉 하던 도중 호노카의 걸음은 이내 멈추게 되었다. 희미한 향기의 길이 끊어져버렸다. 어느 건물에서 나는 걸까, 호노카는 주변을 둘러봐 향기가 흘러나오는 곳을 찾기 시작했지만 어떤 건물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주변이 점점 어두워져가고 있었다. 이대로 포기 할까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매혹적인 향기였다. 여기서 포기한 다면 두 번 다시 마주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노카는 눈을 질끈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한 줄기 가닥을 찾아냈다.

 

여기다!!!”

 

여우 모양의 간판이 걸려 있는 가게, 기세 좋게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연 호노카는 이내 굳어 버리고 말았다. 가게 안은 이제 막 준비를 시작한 것처럼 아직 풀지 못한 짐들로 보이는 상자들이 바닥에 즐비해 있었고 실내 또한 정돈이 덜 된 것 같았다. 그러나 호노카가 놀란 이유는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공간 안에 홀로 서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이정표를 해준 향기의 길과 똑같은 색을 내고 있는 아름다운 금발은 잘 묶어 올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수정과도 같이 푸른 눈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노카는 그녀의 시선에 따라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녀와 호노카의 시선이 멈춘 곳 에는 커피가 한 잔 놓여있었다. 호노카는 알 수 있었다. 호노카가 따라온 향기가 저 커피에서 풍겨져 나온 다는 것을 호노카는 자신도 모르게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이고 말았고, 커피를 마시려던 여성은 누군가 들어왔단 것을 알아채고 커피를 내려놓고 뒤를 돌아가게 안으로 들어온 호노카에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가게가 아직 준비 중이여서요.”
…….그게 죄송합니다. 좋은 향기가 나서 저도 모르게 들어와 버렸네요. , 다음에 올게요.”
좋은 향기요?”
, .그 커피에서.”

그러면 커피 한 잔 하시고 갈래요? 물을 조금 많이 끓여서요.”

.네 감사합니다.”

자 들어오세요.”

 

가게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온 호노카에게 안내를 해줬다. 텅 빈 공간 안 여성이 커피를 올려 놓은 간이 테이블 앞에 선 호노카는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에 테이블 앞에 서서 가만히 기다렸다. 가게 안을 둘러보던 중 방금 전까지 여성이 마시려던 커피 잔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서 나 볼 수 있는 하얀 커피 잔이다. 그러나 안에 담겨 있는 내용물은 흔히 볼 수 있는 커피가 아닌 것 같았다.

 

오래 기다리셨죠, 여기요.”

감사합니다.”
설탕은 몇 개나 넣으시나요?”

설탕은괜찮아요.”

 

호노카를 여기 까지 오게 만든 향기가 눈앞에 있는 잔 안에 담겨 있었다. 평소에 커피를 마실 때는 설탕을 넣었다. 하지만 지금은 설탕을 넣지 않았다. 이 커피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어서다. 밤하늘을 담아 놓은 듯 한 색을 지닌 커피 잔 너머로 호노카가 비추어진다. 뜨거운 김과 같이 올라오는 향기가 호노카를 유혹한다. 눈을 감고 커피 한 모금을 입안에 담는다. 그러자 문뜩 강의를 듣던 생각이 났다. 그것은 커피와 관련된 강의였다. 교수님의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던 도중 이 말씀을 칠판에 적으셨다.

 

'커피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과 같이 뜨겁고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

-탈레랑

이 말을 봤을 때는 그럴 리가 있나, 라고 생각했지만 이 문구가 떠올랐고 탄성이 흘러 나왔다.

 

맛있다.”

고마워요.”

? , 정말로 맛있어요. 여태껏 마셔본 커피 중 제일이에요.”

호노카의 칭찬에 여성은 정말로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순간 호노카의 심장이 철렁 내려 앉은 것 같았다.

 

저기, 가게 이름이 뭔가요? 언제 여세요? 다시 이 커피를 마실 수 있을까요?”

천천히 하나하나 말해줄게요. 가게 이름은 아직 없고 여는 날짜는 아마도 3주 정도 뒤에요, 물론 이 커피는 언제든지 마실 수 있어요.”

으음, 3주씩이나 걸리나요.”

 

3주라 정말 애매한 기간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우미와 코토리를 데리고 와서 이 커피를 마시게 해주고 싶을 만큼 호노카는 이 커피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과자류를 좋아하는 코토리가 온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런데도 3주나 걸린다니 호노카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지려 할 때 여성이 말했다.

 

그러면 제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실래요? 그러면 언제든지 커피 한 잔 정도는 대접해 드릴게요.”

어떤 건가요? 할 게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어떤 거라든지.”

 

호노카의 적극적인 태도에 놀란 걸까,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결심한 듯 호노카를 보며 말했다.

 

저랑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이곳 에 온지 얼마 안 되서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거든요.”

친구요?”

역시 이상하려나.”

아뇨, 친구해요. 저는 코우사카 호노카 대학생이에요.”

? 정말로?”

물론이죠.”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기까지 하는 당당한 호노카의 태도에 가볍게 안도의 한 숨을 내신 뒤 여성은 손을 내밀고 호노카의 손을 잡아 악수를 하며 말했다

 

저는 아야세 에리. 곧 이 카페에 바리스타 겸 마스터에요.”
그러면 잘 부탁드려요 아야세씨.”
나도 잘 부탁해요 코우사카양. 참 전화 번호 교환 가능 할까요?”

네 물론이죠.”

 

호노카는 에리에게 핸드폰을 건네줬다. 콧노래를 부르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에리가 호노카에게 말했다.

 

코우사카양 전화가 오고 있는데.”

전화요?”

, 우미쨩? 이란 분한테서 전화가 아, 끊겼다. 여기 번호 입력했어요.”

……., 감사합니다.”
코우사카양 안색이 안 좋은데?”

,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늘 커피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또 봬요.”
커피를 단숨에 들이 킨 호노카는 가게에서 도망치듯 달려 나갔다. 잠시 뒤 핸드폰에서는 짧은 진동이 느껴져 확인을 해보니 코토리에게서 온 문자였다.

 

호노카쨩. 미안해.”

 

코토리는 무엇이 미안하다는 것일 까, 호노카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며 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에리 혼자가 된 가게 안, 새로운 핸드폰 번호가 입력되었다. 처음 가게에 들어왔을 때는 당황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에리는 자신도 모르게 커피를 대접해 주고 말았다.

 

코우사카양인가 귀여운 아이네. 후후.”

 

설레는 마음으로 가게 정리를 계속해 나갔다. 호노카를 다시 부르려면 일단 가게의 정돈은 마쳐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간이 테이블이 아닌 제대로 된 테이블과 커피 잔을 준비해 호노카를 맞이해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점점 깊어져 가는 밤, 어느 때와 같은 하루에 작은 인연의 매듭이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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