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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에리] 커피 2

Aeon16 2017. 1. 23. 15:17

호노카의 일상에는 아주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언제나 지치고 칙칙하게만 느껴지는 학교생활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강의 또한 흥미롭게 느껴졌다. 모든 수업이 끝난 뒤, 같이 놀자고 하는 여러 친구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호노카는 정중히 거절 하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일찍 끝나거나 늦게 끝나거나 호노카가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여우 모양의 철제 간판이 걸려 있고, 하늘색 문이 잘 어울리는 가게, 호노카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자,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서 오세요, 호노카양.”

안녕하세요, 에리씨.”

 

바쁜 와중에도 에리는 호노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인사를 해줬다. 에리가 미소를 짓자, 가게 안이 한층 더 밝아진 느낌이었고 커피를 마시며 에리를 슬쩍 슬쩍 보던 사람들도 잠시 동안 에리에게 시선이 고정되었다. 호노카는 계산대 앞으로 다가가 에리에게 말했다.

 

오늘도 바쁘네요.”

그러게 호노카가 홍보를 해준 덕분도 있을 텐데 정말 너무 바빠.”

 

호노카는 자신의 행동이 살짝 과했을까 잠깐 후회를 했다. 에리의 가게에 처음 방문 한 뒤, 우미와 코토리를 데리고 에리의 가게에 왔었다. 코토리는 물론이고 우미에게 또한 호평을 들었다. 이후 자신감이 붙어 학과 친구들을 에리의 가게에 데리고 왔다. 그날 이후로 에리의 가게에 대한 소문이 마치 들판에 불이 번지듯 빠르게 번져 나갔다. 특히 같은 학과에 있는 남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었고, 학교에서 몇 번 본적 있는 남자들이 있었고 어느새 에리의 가게는 항상 문전선시를 이뤘다. 예상외의 호황에 에리도 처음에는 크게 놀랐듯 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일을 처리해 나갔지만, 역시나 조금 지쳐 보였다. 지금도 웃고 있기는 했지만 힘들어 보이는 기색이 역려 했다. 오늘도 커피만 빠르게 받고 갈 생각이었지만, 지금 이렇게 된 책임감을 느낀 호노카는 에리에게 말했다.

 

저기 에리씨.”

주문은 지난번과 똑 같이?”

아뇨, 제가 일을 좀 도와드릴게요. 지금 에리씨가 바쁜 것 도 저 때문이기도 하니깐.”

, 아니 그럴 필요는…….”

저기, 카페라떼 아직 인가요?”


손님의 말이 날아들자 마자 에리는 호노카에게 바로 도움을 청했다. 아직 유니폼 같은 것이 없기에 가방만을 내려놓고 에리를 돕기 시작했다. 에리는 빠르게 커피를 내리고 호노카는 커피를 받아 서빙을 했다. 약간의 여유가 생긴 에리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작업을 이어갔다. 창밖의 풍경이 점점 어두워지고 가게안의 불이 더욱 환해져가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테이블 위에 올려 진 머그잔을 에리에게 건네자 에리는 물을 받아놓은 싱크대에 컵을 집어넣었다. 잔에 남아 있던 커피가 물에 섞이고 수면 위로 갈색 잉크가 번져나갔지만, 이내 사라졌다.

 

으아, 끝난 건가요.”

그래, 고생했어. 호노카.”

 

고맙다고 해주는 에리의 말을 듣자, 어째서인지 방금 전까지 어깨를 짓누르던 피로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마치 커피를 마신 것처럼 정신이 맑아져갔다. 정말이지 신기해, 에리씨를 보면 하늘 위를 걷는 듯한 부유감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원래는 사람이 빠질 때까지만 도와주려 했지만, 마감까지 같이 할 줄은 또 우미쨩에게 혼날지도 모르겠어, 방금 전까지 하늘을 나는 것 같았지만 이내 땅으로 추락해버렸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덜 혼나겠지, 계산대 뒤쪽에 내려놓은 가방을 메고 나갈 채비를 마치자 에리가 말했다.

 

호노카양,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여기 급여야.”

? 아뇨, 그럴 생각으로 도와드린 건 아닌데 괜찮아요.”

받아둬, 오늘 고생 많이 했잖아. 그리고 이건 서비스야.”

 

커피 박스에 담긴 커피 3잔 평소 호노카가 주문하던 3종류의 커피 향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컵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는 방금 전 에리가 내려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런걸. 받으려 한 건 아니지만 에리의 강경한 태도에 급여와 커피를 들고 가게를 나왔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까지도 커피만을 받으려 했지만 에리는 그럴 틈도 주지 않았다. 하얀 봉투를 가방 안에 넣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빈자리에 앉자, 피로가 몰려 들었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자 기다렸다는 듯 유리에 자리 잡았던 머리가 호노카의 머리카락을 타고 올라온다. 황급히 머리를 땐 호노카는 차가워진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다, 손에 들린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먼저 마셔도 되겠지.”

 

우미쨩과 코토리쨩의 생각이 났지만, 호노카의 손은 이미 커피 잔을 들려 하고 있었다. 똑같이 생긴 커피 잔이지만 호노카가 마시는 커피의 뚜껑위에는 항상 작은 태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에리가 태양을 그리는 것을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한 모금만 마셔볼까,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시려는 순간, 안내 음이 들렸다. 아차, 내려야 하는 곳이다. 황급히 커피를 도로 넣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아아, 다행이다. 다음 정류장 까지 가지 않아서.”
그러게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호노카.”

맞아, 또 한 참을 걸어 올 뻔 했어. 우미쨩.?”
연락도 안하고 왜 또 이제 오는 겁니까!!!”


우미의 호통에 놀란 호노카는 들고 있던 커피를 모두 놓칠 뻔 했지만, 다행이 떨어트리지 않았다. 정류장에서 바로 집으로 끌려온 호노카는 정좌를 하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마지막은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진정이 된 우미는 소파에 앉아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몇몇 남학생들이 그런 얘기를 한 걸 들은 적이 있네요.”

, 코토리도 들은 적 있어.”

, 뭔데?”
호노카가 말한 대로입니다. 용모가 수려한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려주는 곳이 있다고.”

게다가 맛도 있다고 했지, 정말로 맛있지 에리씨네 커피.”

, 맞다. 여기 에리씨가 준비해준 커피야 지금은 조금 미지근하네.”


황급히 주제를 돌리려 우미와 코토리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둘은 손을 뻗어 커피를 하나 씩 집어 들었고, 호노카도 자신의 커피를 들었다. 미지근한 온도의 커피지만 향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호노카와 우미, 코토리를 동시에 커피를 마시고 칭찬을 이어간다. 표정이 풀어진 우미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에리가 챙겨준 급여가 생각나 가방에 넣어 놓은 봉투를 꺼냈다. 얼마인지 궁금했기에 봉투를 열어 돈을 꺼냈다. 호노카가 봉투를 꺼내자 우미와 코토리가 무엇이냐 물었고 에리씨가 준 아르바이트 비용이라고 말했다. 한 장, 두 장, 세 장, 지폐를 넘길 때 마다 셋의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고 손을 멈추고 돈을 봉투에 넣은 뒤, 휴대폰을 꺼내 에리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몇 번의 착신 음 끝에 에리는 전화를 받았다.

 

, 호노카양 집에 잘 들어갔어? 안 그래도 전화 하려고 했는데.”

, 집에는 잘 들어갔는데요. 에리씨 혹시 그...봉투에 돈을 잘못 넣으신 게 아닌가요?”
아니야, 제대로 넣었는걸.”

, 하지만 너무 과한걸요. 전 에리씨를 잠깐만 도와줬을 뿐이고.”

호노카양은 충분히 날 도와줬어. 그리고 가게가 이렇게 잘 된 것도 호노카양 덕분인걸, 원래는 더 넣어주고 싶었지만.”

아뇨, 아뇨 지금도 너무 많아요. 내일 가게에 갈게요.”

돌려준다는 말 하면 나 화 낼 거예요.”

우우, 하지만.”

오늘은 너무 늦은 것 같으니, 내일 얘기하자 호노카양도 푹 쉬어.”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에리가 먼저 전화를 끊어 버렸다. 탁자 위에 올려 진 봉투를 보고 있을 때, 우미가 먼저 말했다.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우우, 일단 에리씨가 받으라고는 하는데.”

확실히 하루 일한 것 치고는 부담스러운 금액이네.”

코토리쨩 말대로야.”

하지만 에리씨 그분의 성의를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으음, 어떻게 하지., 그렇게 해보자.”

 

이거라면 에리에게 받은 돈을 잘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은 휴일이니 학교에 가지도 않고 다른 일정이 있지도 않았다. 코토리와 우미에게 물어보니 내일 딱히 약속은 없다고 했다. 든든한 아군까지 생겼으니 내일 일은 잘 해결 될 것 이라고 장담을 하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도착했다.”

호노카 정말로 할 겁니까?”
맞아, 호노카쨩 그건 무리야.”

 

점심시간에 맞춰 찾아온 에리의 가게 앞에 선 세 사람은 가게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우미와 코토리는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했지만, 호노카는 이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하며 에리의 가게에 찾아갔다. 문이 열리고 종소리가 들린다. 에리는 반사적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향해 어서 오세요. 라고 말한 뒤 호노카인 것을 보고 반갑게 맞이해줬다. 호노카는 그런 에리의 앞으로 당당하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 에리씨. 돈 안 돌려받을 거죠.”

물론이야.”

알겠어요. 그렇다면, 여기 있는 파르페 종류 전부 주세요.”

?”
지난번부터 먹어보고 싶었어요. 에리씨 가게의 파르페. 그래서 하나씩 먹어보려고요.”

…….지금 겨울인데?”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기도 하잖아요.”

 

커피는 너무 많이 마실 수 없으니, 작전을 바꿔 파르페를 먹기로 했다. 우미와 코토리는 정말 말할 줄은 몰랐다며 한 숨을 쉬며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줄래?”

, 알겠어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걸로 에리씨가 준 돈의 일부를 돌려 줄 수 있다. 계속 이렇게 하면 될 거야. 라고 아주 잠깐 동안 기쁨에 젖어 있었다. 에리가 가져온 파르페를 보기 전까지는 같이 보고 있던 우미와 코토리도 어이가 없다는 듯 에리가 가져온 파르페 들을 봤다. 탁자를 가득 메웠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쟁반위에는 파르페가 남아 있었다. 결국 탁자 두 개를 이어 붙여야 나머지 파르페들도 놓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수에 절로 난색이 표해졌지만 여기서 물러 날 수는 없었다. 숟가락을 들고 파르페 하나를 집어 크게 퍼 입으로 옮겼다.

 

맛있어. 우미쨩도 코토리쨩도 먹어봐.”

“...하아, 정말이지 어쩔 수 없군요.”

그러면 조금 먹어볼까.”

 

솔직히 파르페는 정말로 맛있었다. 적당한 소프트 아이스크림과 과일들이 조화를 잘 이루어 소재를 잘 살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계속해서 먹으면 질리는 법, 파르페를 3개 째, 비웠을 때, 모두의 얼굴은 창백해져갔다.

 

.아직 더…….먹 우읍.”
, 그러니깐 몇 번이나 말리지 않았습니까. 호노가……..”
, 이가 시려 호노카쨩.”

 

파랗게 질린 얼굴과 파랗게 질린 입술이 얼마나 무리하고 있는 지를 잘 보여줬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에리가 다가와 넌지시 물었다.

 

더 드실 겁니까 손님들?”

그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테이블 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호노카가 말했다.

죄송해요 에리씨.”

뭐가요 손님?”

다 먹지도 못할 건데 시켜...
,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이거 사실 여기까지는 모형이거든요.”

?”

 

호노카가 수저를 놓은 바로 옆 파르페를 든 에리는 그대로 파르페를 뒤집었지만 내용물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당황한 호노카는 손을 뻗어 나머지 파르페도 집어 봤지만, 전부 플라스틱의 감촉만이 느껴졌다.

 

제대로 당했군요. 호노카.”


정말로 당해버렸다. 으으, 역시 무리였던 걸까, 빵이었다면 계속 먹었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에리씨에게 돈을 어떻게 돌려주지, 차가운 것을 너무 먹어서 그런 걸까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때 호노카에게 에리가 말했다.

 

호노카양이 정 그렇게 돈을 돌려주고 싶다면, 여기서 잠깐 일해 보는 게 어떨까? 일정 기간 동안은 봉급을 안 받는 걸로 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내가 아르바이트 비를 주는 걸로 이번에는 호노카양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만큼만 급여를 줄게.”

 

생각지도 못한 제안, 하지만 나쁘지 않은 제안 이다. 가게에 있는 파르페를 무작정 시키는 것 보다야 정말 좋은 해결책이다. 에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호노카는 에리의 손을 맞잡았다. 다음에 올 때는 이력서와 기본적인 준비물을 가져와 방문하기로 하고 가게를 나왔다. 배웅해주는 에리를 뒤로 하고 있을 때, 우미가 말했다.

 

호노카가 아르바이트라니...”

호노카도 잘 할 수 있어, 집안일 몇 번이나 도와줬으니깐.”
맞아, 우미쨩. 이렇게 계속 파르페를 먹는 것 보다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거야 물론 그렇지만.걱정이 되는군요.”

우우, 우미쨩은 너무해.”

너무한 건 호노카입니다. 아직도 속이 안 좋은 것 같네요. 그 파르페 들이 모형이라 정말 다행입니다. 한동안 파르페는 보기만 해도 질릴 것 같네요.”

코토리도 그래.”

 

가게의 청소를 마치고 불을 끈다. 순식간에 어두워지는 가게 안, 문을 잠그고 카페 바로 위에 자리 잡은 집으로 올라간다.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루의 피곤함을 씻어내기 위한 샤워이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면 하루를 무사히 끝마쳤다는 안도감이 든다. 수증기로 가득찬 샤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잘 지내고 있어. 장사는 잘되고 있어, 정말로 너무 바빠서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뽑았다니깐. 어떤 사람이냐고?”


어떤 사람이냐는, 그 질문에 에리는 망설임 없이 대답해줬다.

 

파르페를 무지막지하게 시키는 사람, 그리고...이 마을에서의 첫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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