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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에리] 편법

Aeon16 2017. 5. 9. 21:18

해가 저물어갈 무렵,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자, 거실에는 먼저 집에 온 유키호와 아리사가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익숙치 않은 언어들이 스피커 너머로 흘러 나왔고, 호노카는 그에 이끌리듯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 언니왔어?”

안녕하세요.”
다녀왔어 유키호. 근데 지금 뭐 보고 있는거야?”
아리사가 가져온 러시아 영화 지난번에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리사가 가져와줘서 보고 있는 중이야.”
헤에, 그렇구나.”


러시아 영화라 에리도 종종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일본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배경과 배우들이 나와 이국의 말로 이야기를 나눈다. 다행이 화면 아래에 자막이 나와 어떤 내용인지는 대충이나마 알 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하듯 몇 번이나 속삭였다.

 

я тебя люблю (사랑해)”

 

이 대사를 듣자 호노카는 좋은 생각이 난 만화 주인공처럼 머릿속에서 전구가 켜졌고 아리사의 옆으로 천천히 다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기 아리사 방금 저 사람이 뭐라고 한 거야?”
я тебя люблю 말씀하신거에요?”

, 어떻게 발음하면 돼?”
발음은요 ya lyublyu tebya 이런 식으로 하시면..”
고마워, 아리사, 그럼 난 올라가 볼게 유키호.”

 

아리사의 손을 몇 번이나 잡고 흔든 호노카는 아리사가 알려준 말을 몇 번이나 되뇌이며 계단을 올라갔다.

 

언니도 참.”

누구에게 말하려고 러시아어를 가르쳐 달라고 하신 걸까?”

글쎄 누굴까.”

 

호노카가 올라간 계단을 잠시 바라본 유키호는 다시금 영화로 시선을 돌렸다. 방안으로 들어온 호노카는 짐을 풀고 계속 해서 я тебя люблю 를 말했고 내일 에리에게 말해줄 것을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에리쨩 놀라겠지 호노카가...어라 뭐였더라.”


짐을 내려 놓은 호노카는 방금 전까지 러시아 말이 맞는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고, 결국 다시 거실로 내려가 아리사에게 발음을 확인 받았다. 두 번 다시 잊어먹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호노카는 몇 번이나 아리사를 찾아왔다. 영화를 다본 유키호와 아리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유키호는 아리사의 배웅을 위해 현관으로 가고 있을 때, 다시금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호노카와 눈이 마주쳤고 호카가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자 유키호가 말했다

 

я тебя люблю 야 언니.”

,그걸 물어보러 온 게 아니야, 저기 아리사 그러면 이건 뭐라고 해?”

아 이건 말이죠...”

고마워 이건 잊어 먹지 않을 거야!!”

“...왜 갑자기 단어를 바꾼거야?”
더 좋은 생각이 있어서 그래 그럼 이만!!”


도망치듯 계단을 올라간 호노카는 방으로 들어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고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학생회실이라 적혀 있는 문패 아래 서있는 호노카는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하고 말을 했다. 노조미의 말이 맞는다면 에리는 혼자 학생회실에 있을 것이다. 가벼운 노크를 하자 안에서는 친근한 에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리쨩!!”
호노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서류들을 피해 책상으로 올라간 호노카는 무릎을 꿇은 채 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리쨩!! 러시아어로 I IOVE YOU가 뭐야?”
“...? я тебя люблю...?”

그렇게 말고 제대로! 천천히! 진지하게 말이야!!”

, 일단 책상에서 내려와 호노카...”

 

그러나 에리의 말에도 불구하고 호노카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에리에게 재촉을 했고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호노카을 보며 에리가 말했다.

 

내려올 생각은 없구나. ...음 그래서 러시아어는 갑자기 왜?”


에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호노카는 잠시 당황하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에리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 그게...일단 국제화 시대기도 하고... 혹시 러시아에서 라이브를 하면 러시아 팬분들께......러시아어로 감사를...”

수상한데.”


에리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호노카는 책상에서 내려오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 호노카 말대로 러시아 공연을 할 일은 없어보이지만, 호노카로서는 드물게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으니깐, 해줄게 잘 들어.”

, .”

 

에리의 시선을 피하던 호노카는 온데 간데없고, 신이 난 강아지 같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에리를 바라봤다. 목을 가다듬은 에리는 서비스로 윙크를 하고 호노카에게 왼손을 내밀며 연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я тебя люблю.”
“...”

이정 도면 됐어? 호노카...?”

 

에리의 말에 호노카는 오른 손을 뻗어 에리의 엄지로 에리의 입술을 훑고 얼굴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Я ТОЖЕ (나도)”

 

호노카와 에리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호노카의 말에 당황한 에리는 얼굴이 점점 붉어져간다. 오른뺨에서 느껴지는 손의 온기가, 입술을 스쳐지나간 엄지의 감촉이 선명하게 새겨져 가슴을 뛰게 했다. 호노카가 얌전히 책상에서 내려가고 손 또한 에리의 얼굴에서 멀어졌다.

 

하려던 말은 그게 다니깐 호노카는 먼저 연습하러 가있을께, 바이바이 에리쨩.”

“..., , 곧 갈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에리는 온몸에 힘이 빠진 듯 책상에 그대로 엎어졌다. 차가운 책상의 냉기가 한 껏 달아오른 에리의 얼굴을 식혀줬다.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은 호노카의 감촉에 에리는 손을 들어 호노카가 엄지로 누른 입술을 매만졌고 자신의 행동에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

 

으아아아.”


학생회실 밖으로 나간 호노카는 문을 닫자 마자 옆의 벽에 기대어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터질 듯 뛰는 심장, 말만 해주려 했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움직여 에리의 얼굴 아주 잠깐이지만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을 해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민망해 죽을 것 같은 상황 바닥에 앉은 호노카는 붉어진 얼굴을 식히며 마주봤던 에리의 얼굴을 다시금 떠올려버렸고 그 장면은 에리도 호노카도 머릿속에서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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