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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잘되지 않는 하루였다. 시계의 건전지가 다해 알람이 울리지 않아 지각을 할 뻔하고 당황 하는 바람에 교재를 잘못 가져오고, 음료수를 뽑아 마시려 했는데 동전이 하수구 아래로 빠지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은 학생회의 서류가 잘못되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이 오류를 뒤늦게 눈치 챈 것은 모두가 학생회 실을 빠져나가고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정리하다 잘 못된 것을 봤기 때문이다.

 

노조미에게 액땜이라도 부탁해야하나.”

 

에리는 한 숨을 쉬고 잘못 된 서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전부 잘못 됐다면 차라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내일로 미루면 되겠지만, 오류가 난 서류와 그렇지 않은 서류가 뒤섞여 모두 걸러내야 할 판이었다. 어째서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이 우울감이 몰려오지만 계속 우울해 할 수는 없다. 기운을 내어 빠르게 분류를 하려 할 때, 문이 열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에리쨩, 여기 있었구나.”
호노카? 왜 학생회 실에?”
에리쨩한테 전해 줄게 있어서 찾고 있었어. 근데 왜 에리쨩 혼자 있어?”

, 학생회 서류가 잘못 된 게 있어서 분류하고 있었어.”
그럼 호노카가 도와줄게.”

아니야 괜찮아.”
둘이서 하면 더 금방 끝 날거야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에리쨩?”
호노카가 그렇게 말한다면…….일단 여기 날짜가…….”

 

솔직히 고양이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었던 에리기에 말로는 거절 했지만 호노카의 호의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의자를 가져와 에리의 옆에 앉은 호노카에게 서류의 잘 못된 점을 가르쳐줬고 호노카의 기합과 동시에 작업을 시작했다. 책상위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서류들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았지만, 호노카가 도와줌으로 생각보다 일이 빨리 끝났다.

 

다했다.”
고생했어. 호노카.”
헤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글자를 너무 봐서 머리가 좀 어지럽긴하지만.”

 

굳은 몸을 풀기 위해 기지개를 푼다. 뼈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허리와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호노카는 아무렇지 않은 듯 기세 좋게 의자에서 일어났다.

 

호노카는 정말 활기차네. 강아지 같아.”
? 무슨 말 했어 에리쨩?”

아무것도 아니야. 오늘 정말 고마워 호노카.”


학생회실 안은 어느새 노을로 물들어가고 있었고 검은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다. 곧 저녁을 먹을 시간이다. 호노카에게는 보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 에리가 말했다.

 

호노카 같이 저녁 먹으러 가지 않을래? 내가 사줄게.”
정말? 와아, 갈래.”

그러면 어떤 게 좋을까…….”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을 때, 불현 듯 에리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 호노카 나한테 줄게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맞다, 완전 까먹고 있었어, 큰일 날 뻔했다. 오늘 아니면 못 전해 주는 건데.”


큰일 날 뻔했다는 얼굴을 한 호노카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 숨을 쉬고는 에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도대체 뭐기랠 오늘이 아니면 못 전해 준다는 걸까, 호기심이 생긴 에리는 다가오는 호노카는 바라봤다. 에리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호노카는 고개를 올려 에리를 바라봤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가까운 거리, 당황한 에리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을 때, 멋쩍은 듯 에리가 말했다.

 

너무 가까운 거 아니야, 호노카 뭐 길…….”

 

호노카는 조심스럽게 뒤꿈치를 올려 에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을 타고 온몸에 전해진다. 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지고 까치발을 했던 호노카는 뒤꿈치를 내려 바닥에 대었다.

 

헤헤헤.”

?”
오늘…….키스의 날이라고 들어서 에리쨩한테 꼭 해주고 싶어서.”

…….으읏.”


에리의 얼굴이 단풍잎과도 같이 붉게 물들어갔다. 호노카도 부끄러운 듯 볼을 긁적이며 웃음을 흘리고 있을 때 에리가 말했다.

오늘이 키스의 날이라고 했지?”

.”
그러면 이번에는 내 차례구나.”
?”

받기만 하는 건 치사하니깐, 이번에는 내가 해줄게. 싫어?”
아니.”


지그시 눈을 감는 호노카 에리의 얼굴이 다시금 가까워지고, 바닥에 드리워진 호노카와 에리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지고 에리는 노조미의 액땜은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행운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 날 하루는 불행해도 된다고 다짐을 하며, 호노카와 에리의 그림자는 더욱더 길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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