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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에리] 독

Aeon16 2017. 10. 31. 23:22

1031일은 모두가 알고 있듯 핼러윈이다. 악마에게 미움을 받은 망자가 저승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망자의 사정으로 순무로 양초를 만들어 온기와 밝음을 전해줬다는 이야기도 있고 111일 대성인들의 전야제를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지금은 호박모양 전등을 짚 앞에 장식하고 코스프레를 한 뒤 길거리를 여러 사람이 돌아다니는 정도의 축제 같은 느낌이다. 결코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어두워진 날, 귀신 분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결코 무섭다는 게 아니다. 그저 몇몇 장식들이 진짜 같은게 조금 보기 힘든 정도다. 창밖을 보니 몇몇 사람들이 분장을 하고 번화가로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휴일과 같이 빛나는 번화가를 보면 한 번쯤 가볼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예전에 한 번 갔다가 호되게 당한 생각이 떠올랐고 고개를 가로지르며 코코아가 가득 담긴 머그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려 할 때, 현관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지금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걸어가 체인이 걸린 문을 살짝 열어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이고 해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Trick or treat”

호노카 무슨 일이야.”
핼러윈이잖아 에리쨩.”
잠깐만 문 열어줄게.”


다시 문을 닫고 체인을 푼 뒤, 문을 열어 호노카를 집안으로 맞이했다. 문밖에 서 있는 호노카는 검은 망토를 두르고 같은 색인 중절모를 쓰고 있었으며, 송곳니가 입술 사이로 삐져 나와 있었다. 의기양양해 보이는 모습을 보니 호노카 나름의 분장인 것 같았다.


무서워 보이는 흡혈귀네.”

헤헤, 그렇지 그래서 에리쨩 사탕은?”

잠깐만 기다려봐.”


호노카의 말에 사탕을 찾기 위해, 찬장을 뒤적이니 사탕은 나오지 않았지만, 사탕을 대신할 것이 생각났고, 냉장고 문을 열어 한구석에 자리 잡은 와인을 꺼내 들었다.


이걸로는 안될까요 흡혈귀님?”

사탕이 더 좋기는 하지만, 피와 같이 붉은 포도주 또한 나쁘지 않겠지.”


실제 흡열귀 앞의 사라처럼 연기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호노카와 에리는 준비를 마치고 테이블에 앉고, 호노카는 방해가 되는 망토와 모자를 벗은 뒤, 입안에 넣어 놓은 플라스틱 송곳니를 꺼내 내려놨다. 생각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분장용 송곳니를 보니 호기심이 생긴 에리는 호노카에게 말했다.


호노카 그 송곳니는 어디에서 난 거야?”

코토리쨩이 분장을 하면 제대로 해야 한다며 사준 거야, 어때 진짜 같지.”
정말 감쪽같네. 그러면 일단 먼저 한자 하실래요 흡혈귀님.”

.”


호노카의 앞에 놓인 투명한 와인잔 안에 붉은 액체가 천천히 차오른다. 피처럼 붉지는 않았지만, 은은한 적색을 띠고 있는 것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호노카는 에리가 들고 있는 와인을 받아 에리의 와인잔을 채워준다.

와인이 든 와인잔을 든 호노카와 에리는 가볍게 잔을 부딪친다. 청아한 소리가 짧게 울려 퍼지고 와인잔을 입으로 옮긴다. 와인 특유의 향이 입안에 번지고 뒤이어 알콜의 쌉싸름함이 찾아온다.


괜찮네.”
, 맛있다.”

짧은 감상을 말한 호노카와 에리는 준비해둔 치즈와 햄을 먹으며 와인을 마셨다. 와인 병이 절반쯤 비었을 때 호노카가 말했다.

에리쨩.”

왜 호노카?”
그냥 불러봤어, 헤헤.”


불그스름한 기가 돌기 시작한 호노카의 얼굴 조금 취기가 돌기 시작한 것 같이 보였다. 평소보다 빠르게 마셔서일까, 에리 또한 얼굴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호노카의 빈 와인잔을 보고 곧 장 와인을 따라줬고, 호노카는 고맙다고 말하며 채워진 와인잔을 들고 빙글빙글 돌린다. 잔 안에 채워진 와인 또한 같이 돌기 시작하고 작은 소용돌이가 만들어졌고 호노카는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니 잔 안을 돌던 소용돌이가 천천히 멈추고 이내 사라져간다. 와인잔을 바라보던 호노카는 소용돌이가 멈추고 잠잠해진 와인잔을 빤히 바라보고 에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와인을 마신다. 천천히 찾아온 침묵에 호노카와 에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에리가 와인을 마시는 소리만이 들릴 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와인잔이 비워지고 붉은 물방울만이 남아 있을 때, 침묵을 깨고 호노카가 입을 열었다.


에리.”

“...”
다시 한번 물어볼게.”

?”
“Trick or treat.”
“...”


호노카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자리에서 일어난 호노카는 에리에게 다가간다. 내려놓았던 망토와 모자를 쓴 호노카는 에리에게 말한다.


호노카의 장난은 아주 짓궂을 거야, 왜냐면 호노카는 흡혈귀니깐.”

.”


호노카는 손을 뻗어 에리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이 뺨을 타고 전해져 내려온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호노카의 눈동자가 보인다. 언제나 올곧은 빛을 품고 있었지만 지금 호노카의 눈동자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떨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최악이다. 좋아하는 아이를 이렇게나 힘들게 만든다. 여기서 거절을 말은 한마디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런데도 말하지 않고 호노카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는다. 서서히 호노카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알콜의 향기가 담겨 있는 숨결이 느껴진다.


에리...흡혈귀가 어째서 죽는 줄 알아?”
어째서?”
사랑하는 사람조차 먹을것으로 보게 되어가니깐, 굶주린 흡혈귀는 사랑하는 사람의 피를 마셔, 그 피는 흡혈귀를 살게 해주지만 천천히 죽이는 독이 되어 가겠지.”
미안해, 호노카.”


둘의 입술이 포개어진다. 사탕이 입안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듯 단맛이 퍼져나간다. 하지만 이건 달콤함과는 거리가 매우먼 것, 두사람의 감정은 천천히 검게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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