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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

묵시록의 식사

Aeon16 2018.09.19 20:33

아무도 없는 식당의 중앙에는 조명 아래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는 예약석이라는 팻말이 치워지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종소리와 같이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들어온 이들은 매우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는다.

각자의 자리에 앉는 4명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하얀 정장을 입은 자가 가장 먼저 입을 연다.

다들 오랜만이야, W, F,그리고 D.”

그렇군, 다들 여전한 얼굴이야.”

붉은 정장을 입은 W라 불린 이가 맞장구를 친다. 그의 근처에는 진한 화약 냄새와 기름 냄새가 맴돌았지만, 자리에 앉은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그럼 음식을 주문해 볼까?”

검은 정장을 입은 F는 메뉴판을 본 뒤 가장 먼저 음식을 주문한다.

여기 B세트에 파이 추가 하겠습니다.”

여전히 많이 먹는군.”

늘 배가 고프니깐.”

W의 말에 F는 언제나 그렇다는 듯 대답을 한다.

그러면 나는 햄버거 세트로 하지.”
보랏빛 정장을 입은D가 메뉴를 주문하자 WP가 메뉴를 주문한다.

다들 바쁜가보군.”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느라 정신없지.”

그렇겠군, 여기서는 D를 뺀다면 W 네가 가장 정신없겠어.”

고기를 썰던 W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나이프와 포크를 접시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부여잡는다.

그래,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야 옛날이 좋았어. 한 번에 몇이나 사라져 가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니 말이야.”
아무런 말도 없이 음식을 먹은 F는 추가적으로 음식을 주문한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애초부터 음식을 많이 시키는 게 좋지 않나 F?”
나는 이에 대해 몇 번이고 말했던 것 같은데 P, 난 바로 나온 음식을 먹고 싶어서 그런 거야. 너와 다르게 난 항상 배가 고프니깐. 그건 그렇고 P 너도 이제 슬슬 힘이 부치지 않아?”
조용히 식사하지.”

말끔하게 정리된 접시 옆에 놓여 진 커피 잔을 들며 D가 말하자, FP가 입을 다물고 공기가 무거워진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투덕거릴 필요가 있나, 자 어서 먹자고.”

네가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재미있군 W.”
커피를 한 모금 마신 D가 옅은 미소를 짓자, 굳은 분위기가 풀어진다. 다들 식사를 마쳤을 때 쯤, F가 말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그때가 올 때까지겠지.”

언제 가는 올 날이야, 이건 확정된 미래야.”

하지만 옛날이 좋았어, 지금은 너무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게 많으니. 몸에 밴 이 냄새들도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야.”
다시금 시작되는 W의 푸념에 모두들 공감하듯 침묵을 유지하다가 D가 말한다.

그래도 좋은 게 있지, 바로 이것들.”

손에든 커피 잔에 남아 있는 커피를 비우고 식사를 마치고 비어있는 그릇들을 가리킨다.
이런 음식들이 없었다면, 종말이 하루 빨리 다가오길 간절히 바랬을 거야.”

그건 그래.”
그렇지.”
……맞아. , 여기 파이 포장 부탁 할게요.”

망설이던 F또한 긍정의 빛을 내비춘다. 디저트까지 마무리한 이들은 자리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마친다.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벨소리가 들리고 문이 닫힌다. 테이블을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식당 안은 어둠에 잠긴다.

잠시 뒤 식당 밖에서 네 마리의 말 울음소리와 발굽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잠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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