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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눈동자는 붉은 색이다. 마치 인간의 몸에 흐르는 피와도 같은 색을 띄고 있으며, 인간들을 꾀어 영혼을 취한다. 그렇게 그들에게 사로잡힌 영혼은 어느 곳도 가지 못하고 평생을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게 된다. 그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눈동자를 잘 보아라 붉은 색 그것이 악마의 상징이다. 언제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철썩 같이 믿으며 자라온다. 그렇기에 나는 버려졌다.

 

악마의 상징이라 불리는 이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이 수도원에 버려졌다. 내가 버려진 날은 날씨가 흐린 밤이었다고 신부님이 말씀해주셨다. 그날 마을에서 늦게 돌아오신 신부님이 아니셨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을 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버려져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 신부님의 권유에 따라 신에게 헌신하며 살아가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이 눈을 탓에 어딜 가도 배척을 받을 것을 알았기에, 결정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도원이라 해서 괴롭히는 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에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 이곳에서 더욱더 눈에 띄는 적안은 순식간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각종 시선과 괴롭힘, 처음에는 저항도 해봤지만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적안을 지닌 아이는 악마라며 수군거리며 날 쫓아내야 한다고 했지만, 신부님만이 나를 변호하고 보호해주셨다.

 

그런 신부님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괴롭힘에 저항하지 않았다. 최대한 무시를 하며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몇몇 끈질긴 이들을 뺴고는 괴롭힘을 그만두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무시를 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힘들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힘들다고, 왜 그러냐고 그러지 못하는 고통이 너무나도 커서 밤새워 엉엉 울다 지쳐 잠이 드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자신이 살아갈 곳은 이곳 밖에 없었기에 참고 또 참았다. 언젠가는 자신도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신을 믿으며 기도를 하고 그렇게 살아 왔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 작은 소녀가 몰래 안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작은 양초를 들고 몇 번이나 주변을 살펴봤다. 어둠이 녹아 내 앉은 듯한 검은 머리카락이 소녀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인다.

어두운 예배당 안에서도 빛나는 붉은 눈동자는 루비를 깍아 넣은 것 같은 아름다운 붉은 색으로 빛났다.

 

소녀는 양초가 올려 진 받침대를 소리가 나지 않게 올려놓은 뒤 기도를 했다. 낮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기도를 드릴 수가 없기에 아무도 없는 이런 야심한 밤에 홀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양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짧은 기도가 끝나고 바로 앞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에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어땠는지 뭘 먹었는지 아주 사소한 이야기이다. 그런 소녀가 이야기를 멈춘 뒤 조각상에게 말한다.

 

신님, 부탁이 하나 있어요. 아주 자그마한 부탁이요. 저는 말이에요... 친구가 가지고 싶어요. 제 이름을 불러줄 친구요. 더 이상 악마나 괴물이 아닌 [야자와 니코] 라는 제 이름으로 불러줄 친구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니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초를 들고 조각상에게 인사를 한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 다 끝났네.”
니코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널어놓은 하얀 이불보를 바라본다. 푸른 하늘 아래 내리쬐는 햇빛 빨래를 널 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어느덧 완숙한 소녀가 된 니코는 수도원의 소일거리와 뒤치다꺼리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검은 먹으로 그린 듯한 머리카락은 한결 윤기를 더해갔으며, 붉은 눈동자는 더욱 더 아름다운 빛을 발했다. 살짝 커 몇 번이나 접었던 수녀복도 이제는 몸에 딱 맞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수도원에서는 니코를 꺼림칙하게 보는 이들이 많지만 니코는 그런 이들의 반응에 일일이 상대해줄 만큼 한가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니코를 괴롭히는 이들이 입고 있는 옷부터 해서 먹는 음식까지 니코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기에, 니코는 그들을 보며 말 한 적이 있었다.

 

제가 싫으면 지금 입고 있는 옷부터 먹는 음식까지 전부 버리고 새로 준비를 하세요.”

 

니코의 말에 몇몇 이들은 발끈해서 자리에 일어났지만, 맞는 말이기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저 붉어진 얼굴로 니코를 험하게 노려볼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이후로 니코를 보는 시선은 더욱 나빠졌지만, 빨래나 세탁 요리 손질을 스스로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때 마다 니코는 사람들이란 참 이중적이야.” 라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빨래를 마친 니코는 저녁 요리 손질을 하기 위해서, 주방의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도중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기에 사람들이 저렇게 몰려 든걸까? 잠시 호기심이 생겼지만 접어두기로 했으나,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있으면 우리 수도원에 성녀님이 오신데.”

성녀님이라면 그분? 별의 신에게서 하사 받은 자안을 지니고 계신다는.”
맞아, 니시키노님이 우리 수도원에 오신데.”

그 니시키노 마키님이?”

 

다시금 소란스러워지는 무리들을 뒤로하고 니코는 일을 하러 갔다. 니코도 몇 번이나 들어 본적은 있다. 본 교단에는 성녀가 있고, 매우 훌륭하며, 아름다운 자안과 비단과도 같은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라고, 니코와는 정 반대의 소녀이다. 니코는 그런 귀중하신 분이 뭐 하러 이런 시골 수도원까지 오겠냐며 사람들을 비웃으며 앞에 쌓여 있는 감자를 깍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신부님과 원장님이 수도원의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을 강당에 전부 모이게 했다. 원래라면 니코는 이런 일에 모이지 않지만 신부님께서도 나오라고 해서 저만치 뒤에 홀로 앉아 원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수도원에 성녀님이 오시기로 했습니다.”
?”

정말인가요?”

, 하지만 교단 내에서만 알려진 일이니 비밀로 해야 합니다. 성녀님이 일이 커지는 건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조용했던 강당 안이 시끄러워진다. 신부님은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원장님이 말을 계속하도록 도와주셨다. 원장님의 말에 따르면 3 주 뒤 성녀님이 수도원으로 오신다고 한다. 머무는 기간은 일주일 동안 오시는 목적은 수도원에 기도를 위해서라고 한다.

이런 시골에까지 오는 성녀님이라니 사람들이 모두들 감동을 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니코 혼자만 얼굴이 어두웠다.

 

정말로 오는 거야? 하아, 일 많아지겠네.”

 

수도원에서 하는 행사나 마을 축제는 니코에게 있어서 축제가 아니다. 하는 일이 그만큼 늘어나기에 고된 하루가 될 뿐인 날이다. 남들도 고귀하다. 신성하다. 하는 성녀도 니코에게 있어서는 일거리를 왕창 늘려주는 귀찮은 사람으로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환호 할 때와 달리 니코 혼자 한 숨을 쉬며 살며시 강당 밖으로 나왔다.

 

성녀님이 오신다고 발표가 난 날부터 니코는 정말 눈 코 뜰세 없이 바빴다. 한 일을 하면 다른 일이 생기고 또다른 일을 하면 새로운 일이 생겼다.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계속해서 일이 몰려 들었고, 지친 몸을 이끌며 저녁 기도를 드리고 난 뒤 방으로 가면 기절 한 듯이 잠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밀려드는 일은 성녀님이 오기 하루 전날까지 계속 되었다.

 

마침내 성녀님이 오는 날이 되고 니코는 수도원 꼭대기에 있는 자신의 방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수도원 입구 아침부터 성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니코는 침대위에 누워 낡은 천장을 바라봤다. 눈에 띄는 붉은 눈을 지닌 악마의 아이가 저곳에 있어봐야 좋을 것이 하나 없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고 있는 수녀복을 몇 번이고 만져봤다. 예전부터 입어온 낡은 수녀복은 방 한 켠에 접혀 있었다.

성녀님이 온다고 단정히 해야 한다며 새 수녀복까지 주다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새옷의 감촉을 느끼며, 침대 위에 누워있을 때 아래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성녀님이 온 건가. 니코는 몸을 일으켜 바깥을 봤다. 새하얀 갑옷을 입은 이들이 값나가 보이는 마차를 지키고 있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는 이가 멈추자 나머지 이들도 모두 걸음을 멈췄다.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사람들 잠시 뒤 마차가 열리고 누군가가 내렸다.

 

새하얀 눈과 같은 베일을 두르고 있고 니코가 입은 새 수녀복이 넝마로 보일 정도로 비싸 보이는 의복을 입은 사람이 나왔다. 얼굴을 가린 베일을 벗자.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은 붉은 머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있을 때, 원장님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앞으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그녀를 지키는 기사들에 의해 제지를 받을 것 같았지만 그녀가 그만 두라는 듯 손짓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도원의 원장인 램이라고 합니다. 이런 누추한 곳까지 발걸음을 해주신 성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드립니다.”
한껏 긴장한 목소리로 성녀에게 인사를 하는 원장님 성녀는 원장에게 말했다.

고개를 드세요. 제가 오고 싶어서 온걸요. 저를 이렇게나 환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성녀의 인사에 모두들 감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고, 오열하는 이들도 있었다. 방안에 있는 니코에게는 그저 촌극 같아 보였다. 마을 사람을 보던 시선을 돌려 성녀를 바라봤다.

저게 성녀님인가.”
그때, 성녀가 고개를 들었고, 니코와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고, 미소를 지었다. 성녀가 마치 자신을 바라본 것 같은 상황에 니코는 황급히 몸을 숨겼다.

 

설마 나를 본거야? 이 거리에서?”

 

니코는 놀라 두근 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용기를 내어 고개를 다시 내밀어 창밖을 봤으나, 이미 성녀와 그 무리들은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그저 우연에 불과 한거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며 니코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

 

성녀가 온 첫 날 이여서 그런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니코의 방까지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간만에 가지는 휴식인데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이 소란스러움은 저녁이 돼서야 가라앉았다.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와 저녁을 가지러간 니코는 주방의 뒷문을 열어 자신의 몫만을 챙겨 올라갔다. 저녁 식사를 하며 니코는 주방 너머로 보이던 광경을 떠올렸다. 이렇게 홀로 저녁을 먹고 있는 자신과는 다르게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식사를 한다.

 

정말이지 너무하시네요. 고작 눈동자 하나로 이렇게나 하늘과 땅차이가 나다니.”

 

자신은 악마의 상징인 붉은 눈동자를 성녀는 별의 아이라는 보라색 눈동자를 색 하나의 차이로 너무나도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 니코는 입안에 퍼지는 씁쓸한 맛을 가라앉히기 위해 소리 내어 신님께 불평을 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완전한 밤이 되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이 시간이야 말로 니코가 가장 좋아 하는 시간이다. 빈 그릇을 주방에 놓고 온 뒤 수도원 안을 돌아다닌다. 아무도 없기에 눈치를 볼 일도 없다. 오늘 아침에 하지 못한 산책을 마치고 기도를 드리기 위해 예배당으로 간다. 밤의 기도는 언제 부터인가 니코의 일과가 되었다. 양초를 올려놓은 손잡이를 들고 예배당 안으로 가 몇 몇 양초에 불을 붙힌다. 주변이 밝아지며 어둠을 한 발자국 물러가게 해준다.

 

오늘은 조금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각상에게 인사를 하고 기도를 올린다. 한 참 기도를 올리던 중 발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에 니코는 기도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고 문 앞에는 그녀가 서있었다. 아침에 본 적 있는 화려한 의복 백색으로 빛나며 금빛 자수가 들어가 있다.

 

같이 기도 드려도 될까요?”

 

니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봤다면 예의가 없다고 손가락질을 했겠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은 니코와 성녀뿐이다. 긍정의 의미를 받아들인 성녀는 니코의 옆에 앉아 기도를 올린다. 성녀에게서 나오는 좋은 향기가 기도를 하고 있는 니코를 몇 번이나 간질였다. 마치 이쪽을 보라는 듯이. 하지만 니코는 기도에 집중했다. 그렇게 기도가 끝나고 옆을 보자 성녀는 어느새 고개를 돌려 니코를 보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기도를 하는 사람은 저 말고 처음보네요.”
, ...”
어째서 이 밤에 기도를?”

...그게 이 눈동자 때문에...”
눈동자요? , 미안해요.”
성녀의 말에 니코는 고개를 숙인다. 분명 그녀또한 속으로 니코를 꺼림칙하게 여길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니코의 뺨에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이 느껴졌다. 니코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은 것은 성녀의 손이었다.

 

?”

 

예상치도 못한 성녀의 행동에 니코는 어리둥절했다. 성녀의 손은 그대로 니코의 고개를 들게 했고, 니코와 눈을 마주했다. 아름다운 보라색 눈동자다. 그것이 성녀의 눈을 본 니코의 생각이었다. 정말로 성녀다. 라는 확신이 드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눈동자는... 자괴감이 니코를 좀먹어 가려 할 때 성녀가 말했다.

아름다운 눈동자네요.”

?”

아름답다구요, 마치 보석을 세공한 것 같은 아름다운 색이에요.”

,그게,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아름다운 눈동자라니 난생 처음 들어본 말이다.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성녀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니코에게 저는 이만 가볼게요.” 라고 인사를 했고, 니코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성녀에게 인사를 한 뒤 예배당의 정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갔다.

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워 성녀가 해준 말을 중얼거렸다.

아름다운 눈동자...”

그러자 니코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적 없었다. 모두들 악마의 아이라며 매도하고 욕하던 이들이 일상인 니코에게 아름다운 눈동자라니 그저 단순한 감상일지도 모르는 말이 니코에게는 너무나도 따스하게 느꼈다. 니코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되뇌었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 참을 흐느낀 뒤에야 잠이 들었다.

 

눈부신 햇살이 니코의 눈꺼풀 위에 내려 앉아. 니코의 잠을 깨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창 밖을 내려다 봤다. 아직 이른 아침이지만 왠일로 사람들이 허둥지둥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맞다. 성녀님이 오셨지.

성녀의 방문을 떠올린 니코는 오늘도 하루 종일 방안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나쁘지 않았다. 일주일동안 휴식인가, 오늘은 어떤 걸 할까 생각을 하며 세면을 마치고 옷을 입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른 아침 니코의 방을 방문하는 이는 거의 없다 싶이 했다.

니코는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열자, 그곳에는 한 신도가 있었다. 니코도 꽤나 자주 보는 사람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항상 외곽쪽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니코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무슨 일로 오신거죠?”

저기...우리를 좀 도와줘.”
쥐어 짜내듯 말하는 목소리. 니코는 어떤 일을 도와 주면 되냐고 묻자. 그는 지금 예배당의 일손이 모자라, 예배 준비를 하기에 시간이 촉박하다고 했다. 니코는 알겠다고 말한 뒤, 준비를 마치고 그와 같이 예배당으로 내려갔다. 니코가 예배당에 도착하자 몇몇 이들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니코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디까지 준비 하셨나요?”
“...”

니코의 말에 모두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알 수 없는 반응에 예배당 안을 보니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아 있었다. 이들이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지 대충 이해가 됐다. 지금까지 모든 예배 준비는 니코가 해왔다. 그렇기에 예배 준비를 할 줄 모르는 이들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니코가 항상 해왔으니깐,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아마도 마지막 자존심이겠지, 니코는 예배당안에 있는 이들을 한 번 훑어본 후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어디 까지 하셨나요?‘

그게...”

일단 향유부터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향초도요 전부 아래 창고에 있을 겁니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한 이들이 있었지만, 니코의 지시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니코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자 예배 준비는 일사천리고 끝나게 되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니코는 예배당 안에 있는 이들에게 모두들 고생했다고 인사를 하고 예배당 밖으로 나왔다. 곧 예배 시간이 되기에 자신은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

사람들이 오기 전 예배당에 나온 니코는 다시 방으로 돌아갈까 했지만, 예배당에 오기 전 눈에 들어온 빨래더미 같은 일감이 보여서 방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일을 하러 갔다.

쉬어도 되는 날까지 빨래를 하다니 불쌍한 인생이구나.”
빨래를 전부 한 뒤 손을 물기를 닦으며 방으로 돌아가려 할 때, 니코의 몸이 이끌리듯 건물 구석으로 던져졌다. 순식간에 뒤바뀐 시야 니코의 몸은 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굴러 흙먼지가 올라왔다.

통증에 새어 나오는 신음소리를 참으며 고개를 들어 보니 예배당에 있던 몇몇 이들이 니코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니코를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 봤다. 한동안 당하지 않았던 육체적 괴롭힘 안 좋은 추억이 떠올라버렸다.

악마의 자식 주제에.”

건방지긴.”
신부님만 아니였어도 너 따위는.”

수천수만 번을 들어왔던 말들이 니코에게 날아든다. 하지만 어째서 일까, 평소라면 무시 했을 말들인데 가슴으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용솟음치는 것 같았다. 니코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노려봤다.

그러자 몇몇 이들이 흠칫했지만, 한 이가 니코에게 말했다.

그렇게 노려보면 어떻게 할 건데.”

짜증이 섞인 목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발길질 곧 찾아올 고통에 니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주고 있어도 발길질이 날아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뜨니 그들 옆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모두들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본 신도들은 뱀 앞의 개구리처럼 몸이 굳어 버렸다. 성녀 니시키노 마키 그녀는 신도들을 노려봤다. 전에 본 자애로운 미소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차갑디 차가운 표정 하지만 손대면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뜨거움이 느껴졌다. 차가운 분노. 신도들은 스스로 머리를 낮췄다.

묻겠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는거죠?”
,저희는...”

,성녀님.”
, 저년은...”
떨려오는 목소리 마키는 듣기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신도 들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사과하세요.”
?”

하지만 저, 저 악마는.”
사과하지 않으면 성녀의 권한으로 전부 파면을 시키겠습니다.”
신도들의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해져갔다. 그들은 니코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를 한 뒤 마키의 불호령에 도망치듯 그 장소를 벗어났다.

괜찮으신가요?”

, 괜찮습니다.”

마키가 손을 내밀자, 니코는 마키의 손을 잡기 망설였다. 흙먼지 투성이인 자신의 손에 비해 마키의 손은 성녀라는 직책에 걸맞게 너무나도 깨끗했다. 니코가 망설이는 것을 보자, 마키는 움츠러든 니코의 손을 잡아 니코를 일으켜 세워준 뒤 수녀복에 묻은 먼지 또한 털어 주려했으나, 니코가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 제가 하겠습니다.”
그렇게 까지 피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제가 무섭나요?”

,그건 아닙니다만...성녀님의 손이 더러워질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니코는 감사의 인사를 한 뒤 마키에게서 벗어나려 할 때, 마키가 말했다.

저기, 오늘도 기도를 드리러 올 건가요?”

“....”
그러면 그때 봐요.”

그때보자니, 니코는 머리가 아파왔다. 자신의 인생과 가장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이 엮이기 시작했다. 오늘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자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갑자기 생각났다. 아름다운 눈동자네요. 성녀의 목소리가 니코의 목소리에서 울려 퍼졌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철이 들기 전부터 계속해온 기도다. 이런 이유로 빠질 수는 없다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어서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이 하늘을 뒤덮었다. 밖을 돌아다니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들리는 소리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뿐이다. 니코는 등잔불을 들고 예배당으로 걸어갔다. 여지껏 아무도 없었던 밤의 예배당 안에는 한 소녀가 니코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금 불을 붙힐게요.”
니코는 가져온 등잔불을 조각상 앞에 있는 양초에 가져다 대어 불을 옮겼다. 그러고 난 뒤 마키와 니코는 한 자리에 앉아 같이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난 뒤 조각상을 바라보는 마키의 눈동자는 양초의 불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니코는 자신도 모르게 마키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고 말았다.

제 얼굴에 무언가 묻었나요?”
, 아닙니다. 그저, 눈동자가 예뻐서 저도 모르게 그만.”

칭찬 고마워요. 하지만 저는 그쪽 눈동자가 더 아름다운데 말이죠, 그러고 보니 이름조차 안 물어 봤네요. 실례지만 이름이?”
야자와 니코입니다.”

그러면 니코라고 불러도 될까요?”

?”
대신 저도 마키라고 불러도 된답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다시 말하지만 전 니코양의 눈동자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이 보라색 눈동자 보다 말이죠.”

아니에요, 이런 저주 받은 붉은 눈 따위는 전혀 아름답지 않아요.”

그 소문 때문인가요.”

니코의 감정은 점점 복 바쳐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들어 본적 없는 다정한 말. 니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마키에게 말했다.

네 맞아요. 그거 아세요 성녀님? 저는 지금 성녀님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눈동자 때문에 얼굴도 모르는 부모에게 버려졌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사는 것도 순탄치 않았죠, 틈만 나면 아이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고 어른들 또한 저를 악마라 말하며 도움 따위는 주지 않았죠, 만약 신부님이 절 도와주지 않았다면 전 지금 죽었을지도 몰라요. 게다가 오늘 아침에도 보신 적이 있죠? 저는 그런 식으로 구타를 당하는 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일상이었어요. 요즘 성녀님이 오신다고 해서 모두 바빠 그런 일이 부쩍 줄어들었을 뿐이에요. 성녀님이 그 사람들에게 물었죠? 무슨 일을 하는 거냐고 이유는 없어요, 그저 제 붉은 눈이 재수가 없을 뿐이라서 그런 거에요. 전 이 눈동자 때문에 이런 삶을 사는데 성녀님은 제 눈을 아름답다고 악마가 아닌...그저 아름다운 눈동자로.. 봐 주시는 게 저는 너무...흐윽.”

결국 참아왔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신부님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숨겨온 감정을 단 두 번 밖에 보지 못한 마키에게 보여줬다. 니코는 마키의 앞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그동안 방안에서 홀로 울 때와는 다른 눈물이다.

마키는 니코의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줬다. 그런 뒤, 니코를 안아주며 말했다.

얼마든지 우셔도 된답니다.”

마키는 니코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니코를 안아줬다. 시간이 흐르고 울음을 멈춘 니코는 황급히 마키의 품에서 벗어나 죄송하다며 고개숙여 사과를 했다.

그러면 니코 자매님은 어렸을 때부터 이 곳 에서 혼자 쭉 기도를 한건가요.”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시간대가 지금뿐이라서.”

그렇군요. 그러면 니코양은 신을 믿으시나요?”

“....”
그렇게나 고통을 받게 했는데도 말이에요?”

“....”

그렇군요. 정말 신실하시네요. 나는 안 믿는데.”

“...?”
왜냐하면 내가 악마거든.”

갑작스럽게 변한 마키의 분위기 얼굴은 계속 웃고 있었지만, 느낌 자체가 너무나도 달랐다. 방금 전 까지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 들어 주는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세상 모든 것을 깔보고 비웃는 한 미소가 얼굴에 걸려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마키의 옷 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얀 수녀복은 검게 물들어 갔고, 등 뒤에서는 거대한 박쥐의 날개가 솟아났으며 머리에는 산양의 뿔과도 같은 게 자라나고 허리 아래에서는 짐승의 꼬리와도 같은 게 움직이고 있었다.

동화나 성경에서만 보던 것들 박쥐의 날개, 동물의 뿔, 악마의 꼬리 사람들이 말하는 악마 그 자체였다. 변해버린 마키의 모습을 본 니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마키를 바라볼 뿐이었고 마키는 그런 니코를 보며 말했다.

안녕, 다시 자기소개를 할 게 나는 대 악마 니시키노 마키 지금처럼 그냥 마키라고 불러도 상관없어. 잘 부탁해 니코.”

악마, 성경에서만 보던 이름, 자신을 괴롭혀왔던, 존재가 정말로 눈앞에 서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여도 성스럽고, 자애로운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 성녀 마키의 존재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눈앞에 있는 것은 고혹적이고 끝없는 어둠을 형상화 시켜 놓은 것 같은 존재였다. 니코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마키를 보고 있을 때, 마키가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매혹적이기에 니코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어때, 가짜 악마씨, 진짜 악마를 본 소감은?”

“...”

? 말 해봐.”
저에게 무엇을 바라시는 거죠?”

니코의 대답에 마키의 미소는 더욱더 짙어져 갔다. 마치 마음에든 장난감이 더욱더 마음에든 아이와도 같은 미소다.

역시, 니코는 다르네, 다른 사람들한테 이 모습을 보여주면 다들 울며불며 살려달라고 난리거나, 악을 쓰면서 나한테 달려 들던데 말이지.”
저한테 바라는 게 있으니 원래 모습을 보여 주신 거 아닌가요?”

니코의 말에 마키는 능청스럽게 검지로 머리카락 끝을 배배 꼬며 말했다.

맞아, 니코 나와 계약하지 않을래?”

계약이요?”

맞아. 동화책에서도 나오고 이 지긋지긋한 성경에도 나오는 악마와의 계약.”

계약. 악마와의 거래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니코가 어렸을 때 부모가 악마와의 계약을 해서 태어난 아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기에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인간과 악마가 계약을 맺으면 악마는 인간에게 어떤 일이든지 해준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악마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천국은 물론이고 지옥조차도 갈 수 없어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적혀 있는 게 전부였다. 니코가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한껏 긴장하고 있을 때 마키가 말했다.

설마, 악마와 계약을 하면 영원히 고통 받는다. 그런 유치한 거짓말을 생각 하는 거 아니 계약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야.”

어떻게 악마의 말을 믿을 수 있겠어요.”

악마는 믿을 수 가 없다. 방금 전 까지 만해도 성녀라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악마가 되는 것을 눈앞에서 봤다.

그건 그렇네.”
시원스럽게 수긍하는 마키의 태도에 기운이 빠져 버렸다. 마키에게 뭐라 할 뻔했지만 눈앞의 존재가 어떤 존재이지 다시금 상기하며, 정신을 다잡았다. 자신과 같이 악마라고만 불리는 가짜가 아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진짜 악마.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게 경계하지 말아줄래 니코. 난 네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거든.”

니코는 마키의 칭찬을 들어도 경계심을 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행동이 더욱더 니코를 마키의 마음에 들게 했다. 니코는 마키를 보고 마키 또한 니코를 바라본다. 성스럽다고 하는 자안의 눈동자.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일까. 마키는 니코를 보며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 그 안에는 끝없는 어둠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어둠.

그때 마키는 니코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니코는 이마를 만지며 마키를 노려봤다.

악마의 눈동자에는 어둠이 깃들어 있어. 그렇게 봤다가는 혼을 잃어버릴걸, 이런 식으로 넘어 오는 건 재미가 없으니 도와 준거야.”

니코는 아직도 얼얼한 이마를 만지며 마키에게 말했다.

제가 만약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죽일까?”

.”
농담이야. 그렇게 겁먹지 말아줄래 니코. 겁에 질린 얼굴도 귀엽긴 하지만 말이야.”

니코는 알 수 있었다. 마키가 한 말은 농담 같은 게 아니라고, 죽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니코의 몸을 거대한 뱀이 휘감고 지나간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수녀복을 걷어 보니 온몸의 피부가 곤두서 있었다. 여기서 니코가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살아남을 방법은 단 하나 마키와의 계약뿐이다. 니코는 굳게 마음을 먹고 마키에게 말했다.

좋아요. 계약 할게요.”

좋은 생각이야. 자 그러면 계약서를 만들어 볼까.”
마키가 허공에 손을 휘두르자 갈색 양피지와 검은 깃펜이 나왔고 마키는 깃펜을 잡아 양피지 위에 글씨를 써나갔다.

자 이러면 어떨까.”

둘 중 누군가 이 계약을 위반 한다면 혼은 명계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

마키가 이 마을에 머무는 동안 니코가 마키에게 도와 달라고 하면 마키의 승리

그렇지 않을시 니코의 승리

마키가 이길시 니코는 마키의 것이 된다. 니코가 이길 시에는 마키의 한도 내에서 뭐든지 소원을 빌 수가 있다.

계약이라기보다는 내기에 가깝다. 첫 번째 항목이 걸리기는 하지만 마키는 전혀 개의치 않아보였다.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건가. 마키가 머무는 기간은 일주일 남짓 남았다. 그 기간만 버티면 되는거다.

근데 뭐든지 라니 어디까지 가능한가요?”

여왕이라도 만들어 줄까.”
아니요, 그렇게 거창한 것 까지는 필요 없고. 이 눈동자 색을 바꿔 줄 수 있나 해서요.”

하아, 바보 아니야, 그런 아름다운 눈을 바꾸겠다고?”
악마들이라면 몰라도 인간에게서 이 눈은 죄악이니까요.”
정말 인간들이란 의미를 모르겠다니깐, 자기들 멋대로 의견을 부여하고 그걸 믿게 하고. 안 믿으면 이단이라 하고. 정말 마음에 안 들어.”

그게 인간인걸요.”
근데 니코는 왜 계속 존댓말을 하는 거야? 이제 성녀가 아니란 것 도 알았으니 그럴 필요는 없는데.”

버릇이 돼서...이런 쪽이 덜 미움을 받으니까요.”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말한 마키는 양피지에 내용을 하나 더 추가했다.

5. 단 둘이 있을 때 존댓말 금지.

마키가 깃펜을 내려놓자. 양피지는 불타 재조차 남지 않았다. 그 대신에 니코의 손등에는 하트 모양으로 보이는 문양이 생겼다.

안심해 그건 악마들이나 악마랑 계약한 사람 밖에 보이지 않는 상징이야. 그러니 걱정 말아. 그럼 난 이만 돌아가 볼게.”

마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당 밖으로 나갔다. 니코도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져온 등잔불을 보니 어느새 양초가 절반이 넘게 녹아 있었다. 아주 잠깐 인 것 같았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흐르다니, 방으로 돌아간 니코는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너무나도 많은 일어났다. 지금도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감이 없었다. 하지만 절반이나 녹은 양초 피로한 몸이 현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키와의 계약으로 새겨진 손등의 문양을 보며 니코는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니코의 말이 허공을 맴돌고 이내 흩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의 결말은 항상 같았다. 스스로 해결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테니, 니코는 손등의 문양을 보며 마키와의 내기를 다시금 떠올린다.

 

 

 

 

 

 

 

 

 

 

 

 

큰일이야, 늦잠을 자버리다니.”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니 해가 산등성이 위를 오르고 있었다. 늦었다는 생각에 위험한 것조차 잊어버린 니코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예배 준비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늘은 니코가 준비 하는 날이란 것을 잊어버리다니 이게 다 어제 마키 때문이라고 투덜거리며 예배당 문을 열었다.

어서와, 오늘은 조금 늦었네.”

어째서, 당신...아니 네가 여기에.”

너가 아닌 마키라고 불러줘.”
그래, 마키가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야.”
그냥 심심해서 니코를 보러왔는데 안 오 길래 심심풀이로 예배준비나 해놨지. 나머지 좀 도와줄래?”

마키의 말에 니코는 일단 예배 준비를 마치기로 했다. 분명 니코를 도와줄 사람들이 오기로 했을 텐데 없고 마키가 있는 걸로 보아하니 니코에게 무작정 넘기기로 한 것 같았다. 마지막 양초에 불을 붙이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수고했어.”
마키는 미소를 지으며 니코를 봤다. 악마가 예배 준비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그때 바깥이 점점 소란스러워 지는 것을 느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소리가 점차 예배당에 가까워졌다. 무슨 일일까 싶었는데 니코를 보며 웃고 있던 마키의 표정에는 귀찮음과 짜증이 묻어났으나 인기척이 문 앞 까지 느껴지자 금세 표정이 변했다. 성녀에게 걸 맞는 미소. 니코도 깜빡 속아 넘어 갈 뻔 할 정도로 완벽하게 연기를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거친 숨을 내몰아 쉬며 성녀님을 부르짖었다. 마키를 발견한 몇몇 이들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고 마키에게 말했다.

성녀님 말도 없이 어딜 가신 겁니까.”

저희가 얼마나 놀랐는줄 아십니까.”

아침 기도를 올리고 싶어서요.”
마키를 보며 울먹이는 어른들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당신들이 지금 성녀라 부르는 이의 정체를 알면 어떨까. 생각해 봤지만 굳게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는 니코에게 최악의 장소다. 마키를 찾은 사람들은 마키가 기도 했다는 말을 들으며 역시 성녀님이셔. 이런 말을 하고 있을 때 마키의 옆에 앉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니코를 보고는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삽시간에 차갑게 식어가는 분위기 그중 한 명은 마키를 보호 하듯 등뒤로 마키를 숨기고 나머지 사람들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니코를 향해 겨눴다.

서슬 퍼렇게 빛나는 칼날 날카로운 칼끝이 니코를 향하고 있었다.

악마의 상징인 붉은 눈이다.”

악마년 성녀님께 무슨 짓을 하려 한 것이냐.”
예배당 안을 울릴 정도로 큰 외침. 니코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니코를 향해 금방이라도 휘두를 듯한 칼 앞에서 니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들은 계속해서 니코를 추궁했다. 그 위압감에 니코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자 한 남자가 반사적으로 칼을 휘둘렀고 눈먼 칼은 니코의 왼 팔을 스쳤다. 니코의 수녀복의 끝자락이 찢어지고 피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붉은 핏방울이 새하얀 바닥에 떨어진다. 꽃이 피듯 바닥에 떨어져가는 니코의 핏자국을 보고 있을 때, 마키가 일어나 소리쳤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겁니까!!”
분노가 가득담긴 목소리는 방금 전 소리를 지른 남자보다도 더욱더 크게 울렸다. 마키의 일갈에 그들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다.

지금 이곳이 어느 장소인데 칼을 휘두르고 남을 상처 입히는 것입니까. 당장 무기를 거두세요.”

마키의 말에 머뭇거리던 이들은 니코를 보며 하지만 악마가, 라고 변명을 했다가 다시 한 번 마키의 꾸지람을 들었다. 그들은 뱀 앞의 개구리처럼 마키의 앞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지만, 시선은 니코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 아이는 저를 위해 기도 준비를 해준 아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악마라 매도하다니 어리석군요. 당신 들 중 제가 새벽 기도를 하는 것을 아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던가요? 전 항상 새벽 기도를 드립니다. 저와 같은 시간에 기도를 올리는 아이는 저 아이가 처음입니다. 누구보다도 신실할지 모르는 아이를 악마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예배당이 소란스러워지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인파를 이루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을 사이를 비집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온 신부님이 예배당 안을 보며 말했다.

이제 지금 무슨 소란입니까.”
마침 잘 오셨군요. 신부님 저 아이 니코는 악마입니까?”
니코 말인가요? ,아닙니다. 저 아이는 악마가 아닙니다. 그저 눈동자 색이 저럴 뿐 저 아이는 사람입니다.”

아직도 니코가 악마로 보입니까?”
마키의 물음에도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마키는 니코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호신용 칼을 꺼냈다. 작은 칼을 꺼낸 마키는 자신의 손을 그었다. 갑작스러운 마키의 행동에 모두들 경악하며 성녀님 어서 치료를, 당장 약을 가져와라고 소리치며 소란을 피웠다. 그러나 당사자인 마키는 침착하게 니코의 상처 입은 왼손과 피가 흐르는 자신의 왼 손 바닥을 보여줬다.

니코와 마키 둘의 붉은 피가 흘러 바닥을 적셔간다.

보십시오, 이 아이도 저와 같이 붉은 피가 흐릅니다.”

, 그건...‘

아니면 저도 이 아이와 같은 피가 흐르니 악마입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예배당 안에 있는 이들이 모두 고개를 조아린다. 마키는 신부에게 말했다. 여기에 치료를 할 만한 장소가 있나요? 그러자 신부님은 예배당 바로 옆 건물에 방이 하나 있다고 한다. 신부님이 안내를 해준다고 했지만, 마키는 니코의 팔을 잡아 이끌며 예배당을 나가가려하자 사람들이 양 옆으로 갈라졌고, 마키는 니코에게 말했다.

어느 방인지 알죠?”

.”

니코와 같이 예배당을 나가 치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키가 아무도 들어오지 말 라고 엄포를 놓았기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했다.

니코는 피에 젖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소독약을 발랐다. 아려오는 상처. 피를 닦아 내고 붕대를 감으려 했지만 역시 한 손으로는 제대로 감기지 않았다. 니코가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할 때, 마키가 니코의 손에서 붕대를 가져와 대신 감아줬다

꽤나 잘 감네.”
성녀 이미지를 위해 봉사를 하다보면 절로 실력이 늘지.”
마키, 너는 괜찮아?”

걱정해주는 거야? 고맙기도 해라.”

마키는 니코의 앞에 자해한 왼손을 펼쳐 보였으나, 피가 흐르던 왼손은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전과도 같이 깔끔한 상태였다.

진짜 악마네.”
그렇지, 하지만 극적 연출을 위해서 이렇게 감아 주는 거지.”
마키가 손 위에 붕대를 묶자, 붕대는 조금씩 붉어져갔다. 저런 건 정말 편리하네. 니코는 마키에게 먼저 나가라 말했다. 마키는 알겠다며 치료실을 먼저 나가고 오늘 저녁에 보자고 했다. 역시 오늘도 오는 건가. 마키가 나가고 혼자 치료실에 남은 니코는 마키가 묵어준 붕대를 봤다.

신부님이 아닌 다른 사람 아니 악마에게 도움을 받았다. 위로도 악마에게 도움도 악마에게 차라리 악마가 훨씬 인간다운 것 같았다. 물론 내 영혼을 가져가려하는 건 큰 문제가 있지만.

치료소에서 니코가 나오자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역시 마키를 먼저 내보낸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니코는 방으로 올라가 쉬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니코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들은 예배당에서 니코에게 무기 내밀어 위협을 가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니코에게 사과했다.

분명 마키기 시킨 거겠지 씁쓸해지는 입맛 저들은 분명 나를 악마라 생각하기에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거겠지 진짜는 악마에게 명령을 받으면서... 니코는 알겠다고 하며 가서 성녀님을 보필해 달라고 한다. 몇 명이의 불평어린 소리가 들려왔지만, 익숙하기에 그러려니 하고 방으로 돌아갔다.

 

악마가 기도를 드리러 잘도 오네.”

뭐 난 나름대로 신을 좋아하거든.”
어째서?”

한 밤중의 예배당에서 기도를 마친 마키에게 말했다. 그러자 마키는 기다렸다는 듯 신에 대한 지론을 펼쳐준다.

니코, 악마가 가장 원하는 상황이 언제 일 것 같아?”

, 전쟁이나 질병 같이 참혹한 상황이 일어날 때?”
아니야,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절대로 악마를 찾지 않아 오히려 간절하게 찾아. 우리를 제발 여기서 구원해 달라고 말이야. 그렇기에 우리들은 평화로운 날이 좋아. 모두가 평화로울 때 저런 지옥이 없어도 고통 받는 사람들이 나오거든 마치 니코처럼. 니코 너에게는 지금 상황이 저런 끔찍한 상황이랑 다를 게 없지 않아?”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마키,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반박할 말이 없다. 니코의 삶은 전쟁이나 질병 따위가 없어도.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악마가 평화주의자인건 의외네.”

나 같은 악마들은 그래. 몇몇 천박한 놈들이 아니라고 하지만 말이야.”

평화주의자 악마라니 실소가 나올 뻔했다. 기도가 끝난 뒤 이야기를 할 만큼도 했다. 니코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를 마치고 예배당에서 나와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근데 왜 따라 오는 거야?”
신경 쓰지 마. 그냥 니코의 방이 궁금할 뿐이니깐.”

방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건 그냥 들어오겠다는 말이다. 니코는 빠르게 포기를 하고 아무말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낡은 나무 문앞에 선 니코는 마키에게 말했다.

볼 거 하나도 없는데.”

상관없어. 니코가 있으니깐.”

마키는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문이 열리고 니코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한 책상과 옷장, 낡은 수녀복이 걸려 있는 옷걸이와 손때가 잔뜩 묻은 성경, 이것이 니코의 방안에 있는 전부였다. 횅한 공간을 마키가 말했다.

이런 곳에서 사는 거야?”
맞아, 나 같은 사람에게는 딱 어울리는 방이지. 난 이제 그만 잘 테니 그만 나가줄래.”
수녀복을 벗은 뒤 침대 안으로 들어가는 니코를 보며 마키가 말했다.

그래.”
이제야 가는 건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니코는 눈을 감으려 하는데 마키가 침대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뭐 하려는 거야?”

나가려고 잘 자. 니코.”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를 한 마키는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마키의 행동에 놀란 니코는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봤지만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키!!”
다급 하게 마키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싶었다. 초조한 마음에 아슬아슬 할 정도 까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 순간 니코의 머리위에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왜 불러?”

고개를 들어 보니 그곳에는 달빛을 조명 삼아 하늘을 날고 있는 마키가 니코를 보며 웃고 있었다. 푸르른 빛 아래 서도 빛을 발하는 보라색 눈동자. 마키의 등 뒤에 있는 악마의 날개는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키는 일그러진 니코의 얼굴을 보더니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숙소로 날아갔다.

정말 걱정을 해줘도 보람이 없는 악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마키가 그렇게 싫지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악마를 좋아한다니 신님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었지만, 과거의 신에게 빌었던 소원중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으로 불러줄 친구를 부탁했는데 악마를 보내 주신건가요. 게다가 너무 늦으셨어요. 하지만... 감사합니다.”

그렇게 마키를 만나는 일은 계속 됐다. 아침기도를 가서 만나고 저녁 기도에서도 만난다. 하는 이야기는 별거 없다. 니코는 오늘 뭘 했는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 했고, 마키는 교단의 인간들에 대한 불평이 주를 이루었다. 소녀들이 주로 하는 화사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니코는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손등의 문양을 볼 때마다. 마키가 악마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마키는 인간이 아니란 것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마키가 떠나는 날이 가까워져 올 때마다. 어째서인지 니코의 마음은 점점 허전해져갔다. 마키가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것뿐이라 생각했다. 홀로 기도를 드리며. 소일거리를 하는 일상.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깊은 한 숨이 나왔다. 심란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기도를 가던 도중 다시금 밖이 시끄러워졌다.

또 뭐야?”

일거리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수도원 밖에 있는 사람들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마키가 타고 온 마차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고급진 마차와 그 주변을 지키는 병사들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방문에 원장은 헐레벌떡 수도원 입구로 달려갔다.

,영주님 어,어떤 일로 오신겁니까.”

이곳에 본 교단의 성녀님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어째서 제게 알려주시지 않은 겁니까.”
, ,그게...”

제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원장에게 위압을 주는 영주 사이에 마키가 끼어들었다. 원장은 구원자를 만난 듯한 표정으로 성녀님을 불렀다. 영주는 원장에게서 고개를 돌려 마키를 보고 인사를 한다. 마키도 그에 화답해 영주에게 인사를 했다. 영주는 자신의 성으로 오길 원했다. 하지만 마키는 영주의 호의를 완곡하게 거절하고 수도원에 있기로 결정한다. 이곳에 온 목표가 기도를 위해서니 영주의 성으로 가면 그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고 곧 교단으로 돌아가야 해서 갈 수 없다고 했다. 영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성녀님을 위한 작은 연회 정도는 괜찮겠지요?”
, 그정도라면...”

그러면 준비를 하겠습니다. 모두들 어서 준비 하거라.”

영주의 말에 문 앞에서 대하고 있던 짐마차와 사람들이 수도원 안으로 몰려 들었고, 수도원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손을 빌려 달라며 쉬고 있는 이들까지 전부 연회를 돕게 되었다. 정신없이 아침부터 연회 준비를 하게 됐다. 얼떨결에 니코도 끌려가게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최대한 피한 채 구석에서 일을 하게 됐다.

결국 오늘도 일인가.”

기도도 드리지 못하고 일을 하게 된 것을 불평하며 채소들을 손질하고 있을 때, 저 멀리서 한 시선을 느낀다. 비대한 몸을 지니고 한 껏 충혈된 눈으로 니코 이외의 수도원의 여성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

어느새 니코의 옆에 다가온 영주의 하인 중 한 사람이 옆에 앉아 니코에게 말했다.

저놈...아니 저분은 영주님의 아들인데, 보다싶이 참 질이 나쁜 놈..아니 사람이에요. 저 사람 눈에 찍혀서 좋을 게 없으니 최대한 피해 다니세요.”

,네 감사합니다.”

영주의 아들. 니코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를 피해 수도원으로 도망쳐온 여성도 간간히 봤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두꺼비가 온 몸에 붙은 것 같다고 말했는데 그와 눈이 마주치자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니코는 영주 아들의 시선을 피해 하인과 같이 재료 손질을 계속해갔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연회 준비를 마쳤다.

진짜 사람 너무 부려먹는거 아니야.”

영주의 체면을 살린다는 명목하에 작은 연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상당한 준비를 했다. 여기저기서 불만이 새어 나오려 했지만 원장과 신부님이 사람들을 자 다독여 어찌어찌 일을 끝까지 할 수 있었다. 그 뒤 모두들 피곤에 절어 바로 휴식을 취하러 갔지만, 니코는 지친 몸을 이끌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마키가 기다릴 수도 있기에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지만 마키는 없었다.

영주가 붙잡고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영주는 마키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일까 하루종일 마키의 옆에 붙어서 무슨 얘기를 멈추지도 않고 계속했다. 성녀로써의 마키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악마인 마키는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자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오늘은 오랜만에 혼자 기도를 드린다. 그때 예배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혹시 마키가 아닌가 싶어 니코는 고개를 돌려 말했다.

뭐야 오늘은 늦었네?”

?”

전혀 다른 목소리, 바닥에 쇠갈고리를 긁는 섬칫 한 소리였다.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은 마키가 아닌 아침에 본 영주의 아들이었다. 그가 들어오자 예배당 안에는 술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이미 거하게 마시고 온 듯 그의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으며 한 손에는 반 쯤 마신 술병 또한 손에 들려 있었다.

, 죄송합니다. 아는 사람인줄 알고.”

네가 그 악마년이냐?”

“...”

묻고 있지 않냐. 대답해라 네가 그 소문의 악마냐.”
저는 악마가 아닙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원래라면 맞습니다. 이렇게 인정을 하고 넘어갔을 텐데, 부정을 하는 말이 나와버렸다. 그러자 영주의 아들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뱀이 웃는 것 같이 소름이 끼치는 미소다. 니코는 본능적으로 밀려오는 생리적 거부함을 억누르며 예배당을 벗어나려 할 때, 영주의 아들이 니코의 손목을 가로 채며 말했다. 기분 나쁜 액체가 손목을 감싸는 것 같다. 영주의 아들이 입을 열자 역한 술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그러면 내가 친히 확인해주마.”

니코가 저항을 하려 하자 영주아들은 그대로 니코를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힘의 차이로 바닥을 구른 니코는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영주의 아들이 니코의 위에 올라탔다. 그의 붉은 혀가 니코의 하얀 뺨을 핥는다. 욕지기가 절로 올라올 것 같은 냄새가 올라온다.

몇 몇 악마들은 아름다운 외모로 사람들을 꼬드긴다는데 너의 얼굴이 제법 반반하니 의심이 드는 군 확인 해야겠다.”

그는 육중한 몸으로 니코를 누르며 저항하지 말라며 소리쳤다. 그의 손이 니코의 몸을 타고 하복부로 내려가 수녀복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니코가 외쳤다.

저리가!!!”
그 순간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예배당안의 어둠을 밝혀주던 양초는 전부 꺼지고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영주의 아들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외친다.

거기에 아무도 없느냐.”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기분 나쁠 정도의 고요함이 예배당 안을 채워가고 있을 때, 어떤 소리가 들린다.

까아악.

그것은 짐승의 울음소리. 어둠이 녹아내린 것 같은 검은 깃을 가진 짐승, 하나 뿐인 울음소리가 늘어난다. 문 밖에도 예배당의 위에도 창문 위에도 서서히 까마귀가 몰려든다.

, 뭐야.”

어둠속에서도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지닌 까마귀들의 눈은 영주를 응시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영주의 아들이 뒷걸음질 치며 예배당안을 벗어나려 할 때, 니코는 몸을 일으켰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눈앞에 있는 영주의 아들을 봤다. 니코의 눈은 어느 까마귀의 눈동자도 보다도 선명한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울부 짓던 까마귀들이 전부 울음을 멈춘다. 무언가를 기다리듯 니코와 같이 영주의 아들을 응시한다. 그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어째서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두려움을 느끼며 니코를 바라봤다. 방금 전 까지만해도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채울 것에 불과 했는데 지금은 어느 것 보다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와 동시에 까마귀들이 동시에 울부짖으며 영주의 아들을 덮쳤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까마귀들을 떨쳐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예배당 문을 열고 나가며 소리를 질렀지만 까마귀 들은 그를 놓치지 않았다. 잠시 뒤 큰 비명 소리와 함께 둔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까마귀들의 소리 또한 사라졌다.

니코는 예배당에 홀로 남아. 멍하니 문 밖을 바라 봤다. 잠시 뒤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그 뒤 예배당으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니코는 예배당에 온 사람들에게 잡혀 수도원 지하에 갇히게 되었다.

 

당장 일어나!!”

소란스러운 소리에 니코는 눈을 떴다. 밀려드는 두통에 머리를 누르며 일어나니 그곳은 수도원 지하였다. 굳게 닫힌 철장 앞에는 신부님, 원장님, 마키를 지키던 교단의 기사, 그리고 영주가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여기에 있는 것일까, 생각을 하니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니코가 철장에 손을 뻗으려 하는 순간. 기사가 철장을 들고 있던 창으로 철장을 강하게 쳤다. 니코가 물러나자 영주가 소리를 질렀다.

, 악마야.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
시치미를 땔 생각이냐!!”
영주는 분노로 가득 찬 눈동자로 니코를 바라보며 하인들을 시켜 누군가를 불렀다. 몸 여기저기에 붕대를 감고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있었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버렸고 눈동자에는 심한 공포가 서려 있었으며, 음식물을 넣어 놓은 듯 출렁이던 뺨은 계곡처럼 깊게 파여 있었다. 그런 반 폐인을 보며 영주가 말했다.

봐라 망가진 내 아들을 네가 이렇게 한 게 아니냐!!”
어제 봤던 영주의 아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고 그는 중얼거렸다.

악마...붉은 눈의...그는...악마야.”
봐라 붉은 눈. 너밖에 없지 않느냐.”
니코가 영주에게 말을 하려 할 때 신부가 철장 앞에 서서 니코를 변호해 주려 했다. 그러자 영주의 아들의 갑자기 발작을 했다.

으아아, ,살려줘!!!”

당장 비키지 못할까. 나오지 않으면 내 녀석 또한 악마와 한 패로 생각하겠다.”

영주의 협박에 원장은 신부를 잡아당겨 철창 앞에서 비키게 했고, 마키를 수호하던 기사들에게 영주가 물었다. 악마는 어떻게 처리합니까. 그러 그들은 굳은 얼굴로 니코를 보며 말했다.

불로 정화를 시켜야합니다.”
그말은?”

화형입니다.”

그들의 말에 영주는 니코를 에게 말했다. 내일 당장 화형을 시켜주겠다는 말을 던진 뒤 영주가 나가고 나머지 사람들도 지하실을 벗어났다. 신부님은 계속 니코의 옆에 있어주려 했지만, 원장이 신부님을 억지로 끌고 갔다. 마지막으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니코는 혼자가 되었다.

차디찬 지하의 냉기를 느끼자, 수도원 꼭대기에 있는 방과 낡은 침대가 그리워졌다. 예배당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갑자기 벌어진 소란. 분명 마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정말로 악마로 오해 받아 죽을 위기에 처해졌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정말로 악마가 되어 버렸다. 눈물이 나오기 보다는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부스러진 돌 벽에 등을 기대고 곰팡이가 낀 천장을 바라본다.

이렇게 죽는 건가, 그렇게 버텨왔는데, 수많은 상념이 뒤섞여가고 있을 때, 니코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의 이야기가 오가고 문이 열렸다. 점차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철창 앞에 멈춘다. 혹시 마키가 온걸까, 니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세요?”
나란다...니코야...”
신부님?”

울지 않으려 마음먹었지만, 신부님의 얼굴을 보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언제나 자신을 지켜준 신부님, 마키가 오기 전까지는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 분이다. 그런 신부님이 얼굴을 보이자, 니코는 감정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신부님 또한 철창 앞에 무릎을 꿇고 같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니코야...미안하다....결국 이렇게 되버렸구나. 미안하다...”
흐느끼는 신부님에게 니코는 울음을 멈추고 말했다.

신부님, , 아니, 성녀님은요?”

네가 악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호위를 하던 사람들이 황급히 성녀님을 모시고 가더구나, 성녀님은 너를 보겠다고 했지만,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어떻게 하시질 못하더구나.”
그렇군요.”

성녀님과 많이 가까워진 모양이구나.”

그건...”

신부님은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니코도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배웅을 해주기 위해서, 신부님은 자리에서 일어난 니코에게 말했다.

정말로 성녀님과 친해진 것 같구나, 성녀님과 같은 성흔이 너에게도 보인다니, 정말로 자비로우신 분이구나, 너에게도 성흔을 세겨주다니.”

성흔이요?”
그래, 니코의 손등에 있는 문양, 성녀님과 같은 것이 아니니?”
그때, 니코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서늘한 문장이 니코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안심해 그건 악마들이나 악마랑 계약한 사람 밖에 보이지 않는 상징이야. 그러니 걱정 말아. 그럼 난 이만 돌아가 볼게.”

분명 마키는 이렇게 말했다. 냉기가 니코의 발목을 뱀처럼 휘감고 들어와 온 몸을 옥죄어 가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다. 저분은 나를 지켜준 신부님이다. 저분이 없었다면 길거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마키는 악마다. 그러니 거짓을 말했을 수도 있다. 분명 시부님이 잘못 봤을 것이다. 니코의 앞에서 들을 돌리고 멀어져 가는 신부님의 얼굴이 눈동자 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소름이 돋는 비릿한 미소였다.

신부님!!”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신부님은 등을 돌려 니코를 봤다. 그의 얼굴에는 니코가 본 기분 나쁜 미소는 흔적조차 없었고, 구슬픈 표정으로 니코를 보고 있었다.

, 그러니?”

신부님..., 성흔이란거 어떤 모양인가요?”
하트 모양이잖니?”

당신 누구야?”

누구냐니, 나란다 니코 너를 거두워주고 지금까지 길러준...이런 그 눈동자를 보니 뭔가 아는 모양이군.”

묘하게 느껴졌던 위화감 아침에 영주의 아들이 발작을 하며 소리 질렀던게 생각이 났다. 그는 악마야 그는 악마다. 자신은 여성이다. 아무리 경황이 없었도, 니코를 제대로 인식했다면 그가 아닌 그녀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그리고 영주의 아들이 있던 곳에는 신부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완성이 되가는 퍼즐, 고개를 들어 신부의 얼굴을 봤다. 그의 얼굴은 한줌의 자애로움 따위는 없었다. 사악함과 비열함이라는 단어를 조각해 만든 가면을 쓴 것 과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의 눈동자 또한 니코와 같은 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제, 지긋지긋한 신부 노릇을 할 필요가 없어졌군, 정말로 역겨웠어. 하지만 하나 재미있는 것 있었지, 어리석은 인간들이 악마인 나를 신부님이라 부르며 칭송하고 인간인 너를 악마라고 부르고 괴롭히는게 말이야, 진짜 악마는 눈앞에 있는 데 애먼 인간을 괴롭히다니, 정말로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어.”

...”

이런 이제 신부님이라 불러주지 않는거니 니코?”

닥쳐.”

너를 처음 주웠을 때부터 느꼈지, , 이건 좋은 영혼이다. 그래서 너의 영혼을 숙성 시킨거야, 와인처럼 말이지 아주 오랜 시간이었어, 괴로웠지, 몇 번이나 너를 죽이고 그 영혼을 탐하려 했는데, 이렇게 되다니, 아쉬워 그 얼간이 같은 인간이 너를 더럽히려 했지 감히 나의 것에 손을 데려 하다니 참지 못한 게 문제였어, 생각보다 이르지만 너의 영혼을 가지게 될 것 같아서 말이야 아쉬우면서 기쁘군.”

비릿한 미소를 지은 신부는 분노로 가득 찬 니코의 얼굴을 사랑스럽다는 듯 한 번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지하실을 나갔다.

악마였다니, 자신을 돌봐준 사람이 진짜 악마였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영혼을 취하려는 악마.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명백히 눈앞에 악마가 존재 하는데 자신을 악마라 부르는 이들이 원망스러웠다. 이 상황에 분노했다. 그저 눈동자가 붉고 머리가 검을 뿐인데, 고작 이딴 것 때문에...손등에 있는 문양이 점차 희미해져간다. 아마, 마키는 마을을 나간거겠지, 계약 또한 끝났다. 악마에게서 이겼다.

마키.”
나지막히 이름을 불러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지금이라도 옆에 나타나 한 껏 조롱을 퍼부울 것 같았지만, 마키는 오지 않았다. 방안을 희미하게 비추던 달 빛 마저 두터운 구름에 가려져 지하실 안에는 짙은 어둠이 자리 잡았다. 마치 니코의 상황과도 같이 한 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해가 뜨고 지하실이 밝아지기도 전에 사람들은 니코를 지하실에서 거칠게 끌고 나왔다. 어둠에 익숙해진 니코의 눈은 갑작스럽게 빛을 쬐자 고통이 느껴졌다. 인상을 쓰자 그들은 니코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들의 억척스러운 팔에 이끌려 내동댕이쳐지듯 교회 밖으로 끌려 나왔다. 어린 아이의 팔뚝과도 같은 굵은 동아줄로 니코를 묶고 화형대가 만들어진 장소로 데려 갔다. 사람이 아닌 물건을 끌고 가듯 니코를 다룬다, 여기저기 생채기가나 붉은 핏방울이 맺히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화형대 앞에 도달한 니코는 가운데 높에 솟은 통나무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묶였다. 코를 찌르듯 강하게 느껴지는 기름 냄새가 니코를 괴롭혔다.

죽어.”

이 악마.”

언젠가 그럴 줄 알았어.”

화형대 주변에는 군중이 몰려 들어있었고, 그들은 손에 들린 돌, 썩은 야채등을 니코를 향해 던졌다. 대부분 화형대 근처에 떨어졌지만, 그중 한 돌멩이가 니코의 이마를 적중했다. 붉은피가 니코의 이마를 타고 흘러 얼굴을 타고 흘러 바닥에 떨어진다. 그것을 본 이들은 더욱 흥분해 돌을 던진다. 수많은 돌들이 니코의 몸을 강타하지만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엉망이 된 니코의 수녀복과 몸, 저 멀리서 횃불을 들고 걸어오는 이가 보인다. 이미 충분해 보이는 장작더미에 기름을 더욱더 붓는다. 가까워지는 횃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어째서인지 하늘은 더욱 푸르게 느껴졌다.

아아, 이것이 당신을 믿은 저에게 주는 대답입니까. 당신께서 이러신다면 저는...”

낮은 목소리로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자, 군중중 하나가 소리를 집행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라는 거냐 이 악마야 어서 불을 붙혀.”
당신을 버리겠습니다.”

집행인의 손에서 횃불이 떨어지고 장작에 불이 붙는다. 불길이 치솟고 뜨거운 연기가 올라와 니코의 숨을 막는다. 발 밑 에서 느껴지는 열기 니코는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린다. 연기에 가로 막혀가는 말을 간신히 내뱉는다.

도와줘 마키.”

부른다 해도 올 리가 없다. 계약은 깨진지 오래니깐, 분명 덤덤히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불길이 다가오고 연기가 짙어 질수록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좋겠네, 니코가 눈을 감고 모든 것을 체념하려는 순간, 사람들에게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인지 하지 못한 니코는 눈을 떠 사람들을 바라봤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니코에게로 향해 있던 시선은 모두 니코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갑작스럽게 머리위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어 본다. 방금까지만 해도 느껴졌던 열기와 짙은 연기가 걷히고 니코를 묶어 놓은 나무 기둥 위에는 그녀가 악마의 날개를 활짝 펴고 고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내기는 내가 이긴 거야 니코, 이제 넌 내꺼야.”

마키? 어떻게 분명...계약은...”
난 악마니깐, 널 속였지, 설마 악마와 한 내기가 공정할 거라 생각한건 아니지?”

...”

그것 보다도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나무 기둥위에 서 있는 마키를 본 몇몇이들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니코와 마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죽여, 악마다. 진짜 악마였어, 어서 불을 다시 붙혀 뭘 하는 거야. 내뱉어 지는 욕지거리들 몇몇 이들은 무기를 들고 니코와 마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키는 그런 이들을 쓰레기를 보듯 한 번 보고는 니코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를 도와줘.”

그래. 일단 좀 조용히 하는게 좋겠네.”

마키는 감흥 없다는 듯 손을 한 번 휘둘렀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들 고깃덩어리로 전락해 버렸다. 흙바닥 위에 흐르는 피들을 보고는 시시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신부가 신경질적인 소리를 지르며 나타났다

이게 무슨짓이냐!!!”

처형장에 남아 있는 이들이 아무도 없자,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 악마는 본 모습을 드러낸다. 몇 배로 불어나는 덩치는 신부복을 찢고 나왔다. 짐승의 뿔이 달린 머리, 마키와 같은 박쥐를 닮은 악마의 날개, 하반신은 다리의 근육들이 기형적으로 부풀어있었다.

감히...내가 몇 년이나 정성스럽게 기른 것을...내 년이...”

넌 뭐야.”
? 나는...”
아니, 됐어 알려줄 필요 없어. 기억 할 필요도 없고 가치도 없어 보여, 지금 네가 알아야 할 것은 단 하나야, 나를 불쾌하게 만든 것.”

마키의 말을 들은 악마는 흥분한 듯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마키에게 달려 들었다. 그러나 마키는 전혀 피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고, 악마가 바로 앞까지 다가 올 때, 그저 손을 내밀었다.

끄아아아아악!!!”
갑자기 소리를 내지르며 쓰러지고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진 것은 마키에게 달려든 악마였다. 마키의 손에는 팔이 들려있었다. 니코

는 무슨 일이 일어난것인지 인지조차 못했지만, 단 한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마키에게 저항할 수 있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마키의 손에 들린 팔이 불타고 재가 되어 흩어졌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바닥을 구르는 악마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어 그의 뿔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덩치는 몇배나 차이가 나지만 악마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가 들렸다.

자신감 넘치고 기분 나쁜 기운이 감돌던 악마의 붉은 색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저급하고 더러운 붉은 색, 니코의 붉은 색 과는 전혀 달라 품위가 느껴지지 않아.”

악마의 눈동자를 보던 마키는 품평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악담을 내뱉었다. 어느새 악마의 눈동자에는 공포가 깃들어있었다.

...아니, 당신 같은 분이 어째서 이곳에?”

날 아는구나?”

, 아니, ...,알고 있습니다. 적의 군주시여

살기 위해 온갖 생각을 하는 악마와는 달리 마키는 흥미가 다한 장난감을 보듯 악마를 보고 있다 니코에게 말했다.

어떻게 할까 니코?”

마키의 말에 악마의 시선이 니코에게로 향한다. 어느새 악마는 다시 신부의 모습을 하고 니코에게 말했다.

, 니코 나란다. 너를 길러준 신부님이야 내가 아니었다면 너는...”

절박함이 가득한 신부의 목소리 그의 눈에는 제발 살려 달라고 간절히 애원하는 빛이 가득했다. 그런 악마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마키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니코를 바라봤다.

신부님. 그동안 키워 주신 건 감사해요. 저는 신부님을 따라 신을 섬기고 기도를 했죠.”

맞아, 난 너를 신실하게...”

근데 어떻게 하죠. 난 오늘 신을 버렸는데? 당신의 소원은 당신의 신에게 빌어봐.”

?”

그와 동시의 악마의 머리가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비명을 지르며 떨어진 목은 니코에게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부었으나, 마키는 그 머리를 가차 없이 짓밟았고, 악마의 몸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모든 것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유일하게 나를 보호해줬던 사람은 방금 죽어버렸다. 나를 욕하던 이들도 모두 죽어버렸다. 이제 곧 소란스러워 질 것이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들어보니 마키가 웃고 있었다.

맞다, 내기에서 내가졌지,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내 영혼을 가져 갈 거야?”

아니, 일단 니코를 데리고 본교에 갈건 데?”

?”

이렇게 마기가 넘치고 있으니 니코를 악마가 나온 곳에 생존자라고 할 거야 그리고 눈동자는 마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되고, 니코 너를 내 직속 하인으로 하면 되겠지.”

즐거운 듯 자신의 계획을 말한다. 악마는 영혼을 먹는 게 아니였냐고 마키에게 물었다.

맞아, 근데 난 너의 영혼보다도 너의 이 눈동자와 흑요석 같은 머리카락이 좋아. 평생 니코를 옆에 두며 두고두고 감상 할 거야.”

저 미소를 보니 영혼을 잡아 먹혀 죽는 것 보다 힘든 생활이 펼쳐질 것 같았다. 마키는 어떻게 할지 이야기를 하며 니코의 손을 잡았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손. 악마지만 누구보다도 니코를 잘 이해해준다. 이런 악마의 곁이라면 나름 즐거울 것 같다며 마키를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맞다, 아까 속임수를 썼다고 했지.”

맞아. 악마와의 내기를 하는데 공정하다고 믿은 니코가 바보지.”
어떻게 한건데.”

그 문양 사실 내 마음대로 지울 수 있어, 내 주변에 사역마를 붙이고 상황이 되었을 때, 스리슬쩍 지워서 내가 마을을 나가게 했다고 착각하게 만든 거야, 그리고 네가 나를 부른 순간 계약이 이행 된 거지.”

, 사기잖아.”

맞아, 악마니깐.”

니코를 보며 미소를 짓는 마키, 그 미소는 너무나도 악마답고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곧 있으면 본교에서 사람들이 올 거야. 연기 잘해. 최대한 불쌍한척 아 니코는 원래 불쌍하게 생겼으니 할 필요 없으려나.”

연기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게. 나의 성녀님...아니 악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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