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잘되지 않는 하루였다. 시계의 건전지가 다해 알람이 울리지 않아 지각을 할 뻔하고 당황 하는 바람에 교재를 잘못 가져오고, 음료수를 뽑아 마시려 했는데 동전이 하수구 아래로 빠지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은 학생회의 서류가 잘못되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이 오류를 뒤늦게 눈치 챈 것은 모두가 학생회 실을 빠져나가고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정리하다 잘 못된 것을 봤기 때문이다. “노조미에게 액땜이라도 부탁해야하나.” 에리는 한 숨을 쉬고 잘못 된 서류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전부 잘못 됐다면 차라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내일로 미루면 되겠지만, 오류가 난 서류와 그렇지 않은 서류가 뒤섞여 모두 걸러내야 할 판이었다. 어째서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이 우울감이 몰려오지만 계속 우울해 할 수는 ..
해가 저물어갈 무렵,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오자, 거실에는 먼저 집에 온 유키호와 아리사가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익숙치 않은 언어들이 스피커 너머로 흘러 나왔고, 호노카는 그에 이끌리듯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아, 언니왔어?”“안녕하세요.” “다녀왔어 유키호. 근데 지금 뭐 보고 있는거야?” “아리사가 가져온 러시아 영화 지난번에 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리사가 가져와줘서 보고 있는 중이야.” “헤에, 그렇구나.” 러시아 영화라 에리도 종종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일본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배경과 배우들이 나와 이국의 말로 이야기를 나눈다. 다행이 화면 아래에 자막이 나와 어떤 내용인지는 대충이나마 알 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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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가장 방심하는 계절 봄, 낮에는 따스한 햇볕에 속아, 옷장 속에 묵혀뒀던 봄옷을 꺼내 입고 두터운 겨울옷들을 정리하는 시기이다. 호노카 또한 내리쬐는 햇빛에 겨울옷을 옷장에 걸어 놓고, 날씨에 걸 맞는 옷을 꺼내 입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에리가 말했다. “호노카 조금 춥지 않을까?” “괜찮을 거야, 지난번에는 저 옷을 입고 나갔다가 땀에 흠뻑 젖었는걸.”“그렇긴 해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에리에게 몇 번이나 괜찮다고 말하자, 한 발 물러선 에리는 밖으로 나가는 호노카를 배웅해줬다. 건물 밖으로 나가 짙은 그림자 아래에서 벗어나자, 강렬한 햇빛이 호노카를 반겨줬다. 만약 에리가 권해준 겨울옷을 입고 나갔다면, 지난번처럼 땀을 흘려 고생을 했을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리를 걸으며 약..
발렌타인데이 연인에게 사랑과도 같이 달콤한 초콜릿을 건네줌으로써 한층 더 사랑을 공고히 하기 도 하고 초콜릿을 줌으로써 고백을 해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어떻게 초콜릿을 줄지 고민을 하고 초콜릿을 만들어 보기도 하는 그런 행복이 가득 찬 날에 에리는 한 숨을 쉬었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에리로써 발렌타인데이는 행복한 날임과 동시에 괴로운 날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신발장이나 사물함에는 편지와 같이 포장된 초콜릿들이 한가득 했고 용기를 낸 몇몇 학생들은 에리에게 언니라 불러도 될까요? 같은 고백과 함께 초콜릿을 건네줬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양손 가득 초콜릿이 담긴 봉투를 들고 집으로가 아리사와 같이 초콜릿을 나눠 먹었다. 어쩔 때는 초콜릿을 너무 먹어 배탈이 난적도 있었지만, 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요란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고 기차가 역을 떠난다. 보통의 기차였다면 다음 배차를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그 기차가 마지막 기차였다면 이야기는 순식간에 달라진다. 저 멀리 떠나는 기차를 잡으려 쫒는 두 사람,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며 기차가 멈추길 원했지만 그런 두 사람의 바람을 무시 하듯 기차는 점점 멀어져갔다. 페인트가 벗겨진 외벽, 먼지가 쌓인 의자들과 낙엽만이 뒹구는 허름한 간이역에 서있는 니코와 마키는 점이 되어버린 버스만을 바라봤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일상에 지쳐 피로를 풀기 위해 아무렇게나 여행지를 정하고 출발을 하려 했으나, 둘 다 수면이 매우 부족했기에 운전은 무리였고,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으나. 이렇게 되고 말았다. “하아, 기차에서 잠들게 뭐람.”“하아, ..
오랜만에 가진 휴일에 호노카와 에리와 데이트를 했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고 예약해둔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했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 까지 같이 있으니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집. 즐겁기는 했지만 밖을 하루 종일 돌아다닌 다면 누구라도 지칠 것이다. 호노카는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신발을 벗고 바닥에 엎드렸지만 이내 날아드는 에리의 제지에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한 뒤 소파에 엎드렸다. “샤워는 어떻게 할 거야 호노카?”“으응, 에리쨩 먼저 호노카는 조금 쉬고 할게.” 쿠션에 얼굴을 묻고 에리에게 손을 흔든다. 푹신한 쿠션과 소파는 호노카의 몸을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아침에 뿌린 희미한 탈취제의 향기가 올라온다. 아아, 그러고 보니 탈취..
호노카의 일상에는 아주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언제나 지치고 칙칙하게만 느껴지는 학교생활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강의 또한 흥미롭게 느껴졌다. 모든 수업이 끝난 뒤, 같이 놀자고 하는 여러 친구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호노카는 정중히 거절 하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일찍 끝나거나 늦게 끝나거나 호노카가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여우 모양의 철제 간판이 걸려 있고, 하늘색 문이 잘 어울리는 가게, 호노카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자, 가게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서 오세요, 호노카양.”“안녕하세요, 에리씨.” 바쁜 와중에도 에리는 호노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인사를 해줬다. 에리가 미소를 짓자, 가게 안이 한층 더 밝아진 느낌이었고 커피를 마시며 에리를 슬쩍 슬쩍 보던 사람들도 잠시 동안 에..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며 기지개를 켠다. 밤새 굳어 있던 몸, 근육이 움직이는 소리가 나며 작게 신음소리를 낸다. 안개가 낀 듯 흐리멍덩한 정신을 잡는데 아주 약간의 시간을 보낸 후 침대에서 나온다. 벽장위에 걸려 있는 시계는 언제 나와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 가볍게 아침 식사를 먹은 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한다. 갑작스럽게 쌀쌀해진 요즘 따듯한 온수로 몸을 덥히는 것은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고 준비한 속옷을 입으려는데 최근 들어 조금 끼는 느낌이 든다. 다시 속옷을 사야 하는 걸까, 눈물 나는 지출에 절로 한 숨이 나올 것 같았다. 벽에 걸어 놓은 교복을 입고 등교 준비를 한다. 목도리를 감고 장갑을 끼기 전 하루를 시작하는 일중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장갑을 내려놓..
12월 31일 그 해의 마지막 달을 장식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약속을 잡고 다양한 일을 한다. 같이 티비를 보거나, 행사에 참여 하거나 해돋이를 보러가기 위해 일찍 잠이 드는 사람부터 여러 일을 준비한다. 호노카 또한 약속이 잡혀 있었다. 사람들에게 잡혀 약속에 늦을 뻔 했지만 다행이도 벗어 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거리에는 한 해의 고생을 치하하는 사람들과 새로 다가올 신년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호노카 또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물을 사러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부탁 받았던 식재료들과 맥주를 사서 계산을 하던 도중 문자가 왔다. 어디냐고 묻는, 살짝 재촉이 느껴지는 문자에 호노카는 빠르게 돌아갈 준비를 했다.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달려간다. 이리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