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은 거리. 멀어져 가는 저녁노을에 바닥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가고 건물에는 불이 하나 둘씩 켜져 어둠을 밝힐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저녁 장사를 가게들은 하나둘 씩 문을 열었다. 길거리를 걷고 있는 수많은 사람 모두 일과에 지쳐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준에 깊은 한 숨을 쉬며 걷고 있는 한사람이 있었다. 얼굴에는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었으며, 걸음 또한 무겁게 느껴졌다. “으아, 힘들어.” 호노카는 지친 듯 중얼거리며 길을 걸었다. 학과를 잘못 선택한 걸까, 가업을 있기 위해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 피나는 노력 끝에 대학 진학을 성공했지만 가끔 이렇게 후회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끝없이 쏟아지는 과제에 때때로 이렇게 늦게 집에 돌아 갈 때 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한..
아야세 에리는 최근 들어 고민이 하나가 생겼다. 난감한 고민일지 아니면 행복에 겨운 고민인지는 잘 모르겠다. 행복하며 난감한 고민이다. 아직 학생회장이기에 학생회 실에서 업무를 처리 하는 중이다. 다음 학생회장은 호노카를 위해 인수인계를 겸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호노카를 학생회실로 불러 각종 서류에 대한 내용과 업무방법을 하나 둘씩 알려줬다. 다음 학생회장이라는 책임감을 가진 호노카는 성실하게 메모도 해나가며 학생회장에 대한 일을 배웠다. 대견한 마음에 이런 저런 방법도 알려주고 학생회장만의 비밀인 약간의 편법 또한 알려줬다. 어느 정도 업무를 숙지한 호노카는 에리가 부르지 않아도 곧장 학생회실로 와서 에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원래는 노조미가 에리를 도와줬지만 눈치를 챈 노조미는 어느 순간부터 학생회 ..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리카락, 연분홍빛으로 물든 피부, 살짝 풀어진 표정으로 욕실에서 걸어 나오는 호노카는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가 냉장고에서 차게 식혀둔 우유를 꺼내 단숨에 들이킨다. 호노카의 입술이 우유로 적셔지고 입구에서 일탈을 시도한 우유는 호노카의 입술을 따라 호노카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가고 있을 때, 거실에서 호노카를 기다리던 에리가 말했다. “호노카 어서 이쪽으로 와.”“알았어. 에리쨩.” 입 주변에 생긴 하얀 수염을 목덜미에 걸쳐 놨던 수건으로 닦아 낸 뒤 에리가 기다리고 있는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거실에는 호노카가 앉을 방석과 드라이기, 빗이 준비되어 있었다. 에리는 몇 번이나 드라이기의 바람의 온도를 확인하고 준비를 마쳤다. 호노카는 자연스럽게 방석에 앉아 에리에게 말한다. “머리..
크리스마스. 위대하신 분이 태어난 날 덕분에 쉴 수 있는 날이다. 역시 위대한 분 쯤 되면 생일이고 공휴일이 되는 법이구나 다음에는 위대한 사람으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완연한 겨울 이불을 덮고 있음에도 살짝 한기가 느껴진다. 손을 뻗어 이 한기를 물러가게 해줄 것을 찾는다. 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 봐도 잡히지가 않는다. 황급히 눈을 뜨고 이불을 걷으며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에리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고 있는 호노카가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에리쨩”“호노카도 메리 크리스마스.”“자 핫초코야 에리쨩. 따뜻해 질 거야.”“으음, 난 핫초코 따듯하고 조금 더 단 다른 걸 원하지만 고마워 호노카.” 양손에 들려 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컵 중 하나를 에리에게 건네준..
푸르스름한 새벽녘 하늘이 서서히 걷히고 따사로운 햇살이 도시 곳곳에 번져 나가고 있을 무렵 그런 햇살에 수면을 방해 받지 않기 위해 친 커튼 사이로 햇빛이 비집고 들어와 토죠의 단잠을 방해하기 시작했다.으음, 작은 신음소리와 함께 평소의 버릇대로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침대 구석으로 몸을 피하려 했으나 토죠의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토죠의 이동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바로 앞에 놓여서 길을 가로 막고 있었다. 천천히 넓어져 가는 햇빛의 영역에 토죠는 어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전혀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조금 짜증이 나려 할 때 쯤 무엇이 수면을 방해하고 있는 건지 확인을 위해 수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눈도 잠이 덜 깬 듯 주변이 뿌옇게 보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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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싸우고 말았다. 니코와 싸우는 건 매우 자주 있는 일이다. 아주 사소한 일로 싸우고 여러 방법으로 화를 푼다. 선물을 준다던가, 사과를 한다던가, 밤을 기다린다던가, 오늘 아침 싸운 일도 바로 사과를 했으면 그 자리에서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그런 날 아주 예민해져서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평소보다도 기분이 나쁜 운이 없는 날. 마키에게는 오늘 아침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언제 나와 같은 토요일 아침 누구라도 기분이 좋을 휴일 아침이다. 하지만 마키는 눈앞에 놓여 있는 계란후라이를 보며 말했다. “어째서 반숙이 아닌 거야?”“응?” “계란 후라이가 반숙이 아니야...”볼멘 목소리로 마키가 말하자 니코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마키에게 말했다...
호노카는 침대위에서 앉았다. 누웠다. 자리에서 일어 섰다를 반복하고 전화를 할까 말까 몇 번이나 고민 했다. 지금 하는 게 좋겠지. 음, 그럴 거야. 지금 밖에 없어. 몇 번이나 핸드폰을 만지고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 했다. 손에 들린 두 장의 티켓 부모님의 부탁으로 심부름을 갔다가 우연히 얻게 된 수족관 무료 입장권이다. 이걸 건네준 가게 분도 웃으며 호노카에게 데이트를 다녀오라고 말했다. 호노카는 손사래를 치며 그럴 사람이 없다고는 했다. 데이트를 갈사람 보다는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금발을 지니고 호수와도 같이 푸른 눈동자가 생각나는 호노카가 사랑하는 사람 호노카의 연인 아야세 에리. 티켓을 들고 방위로 올라온 호노카는 아까 전부터 몇 번이나 고민을 했다. 에리에게 데이트 신청..
이를 닦는 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행위이다. 사람의 이는 상어 같은 동물처럼 계속해서 자라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잃으면 그대로 끝이 나버린다. 현대에는 과학이 발전해 임플란트라는 도구가 있기는 하지만 한 번 맞출 때 마다 손이 덜덜 떨릴 정도의 지출이 나간다. 그렇기에 최대한 이를 소중히 하며 충치 같은 질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분명 그렇게 해야 하는 게 맞다. “싫어~ 그냥 잘래.” “욧쨩. 그러면 안 된다니깐.”“우우, 리리는 너무 깐깐해.” 취기가 잔뜩 올라 잘 익은 사과 같이 붉어진 얼굴, 몸에서 올라오는 술 냄새. 소파에 누워있는 요시코는 절대로 양치를 하지 않겠다며 리코에게 한껏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검은 가죽 소파에 고양이처럼 누워 아등바등 거리는 요..
생일. 자신이 태어난 날을 말한다. 1월부터 12월에서 1일부터 30일까지 다양한 날이 존재하며 각자의 생일이 존재하며 그날 하루는 자신이 주인공이 된 기분 또한 맛 볼 수 있다. 10월 21일 집안에 걸려 있는 달력에는 붉은색 동그라미가 매우 큼지막하게 그려져 20일과 22일을 가리고 있었다. 에리는 한사코 말렸지만 같이 사는 동거인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버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수도꼭지를 잠갔다. 방안을 가득 메우던 물소리가 접시를 닦는 소리로 바뀐다. 주변의 물기까지 완벽하게 제거한 후에야 에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슬슬 준비해 볼까.” 주황색 앞치마를 벗어 걸어 놓은 뒤 방안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다되어 갔다. 여유가 있을 거 라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