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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아침 일기예보에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었기에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저 기우라 생각하며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흐려진 하늘에서는 세차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큰일이군요.” 전혀 수그라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 장대비를 보며 우미는 궁도부실 앞에 서있었다. 이렇게 비가 온다면 뛰어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핸드폰을 보며 누구에게 연락을 할 까 고민하던 도중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미?”“에리? 어째서 이 시간까지?”“우미야 말로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야?” 궁도부실 앞에 서있는 에리에게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오늘은 특별히 우미가 궁도부원들에게 궁도 시범겸 교육시간이 있어서 궁도부원들의 지도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늦었고 홀로 남아 오랜만에 활을..
건물의 불이 하나 둘씩 꺼져가는 밤. 시간이 깊어 떠들썩했던 거리는 적막만이 내려 앉아. 풀벌레 우는 소리와 가로등 불 빛 만이거리를 밝히고 있는 깊은 밤. 이런 야심한 시간에도 유난히 밝은 빛을 내는 방이 있었다. 거실의 형광등은 밝게 켜져 있었고, 거실에는 한층 밝은 노트북 빛이 더해졌다. 능수능란하게 키보드 위를 무대 삼아 춤추는 손가락들은 쉴 틈 없이 춤을 추고 경쾌한 타자소리들이 무대의 배경음악이 되어줬다. 무대가 끝을 고하듯 타자 위에서 움직임을 멈추고 옆에 있는 마우스로 옮겨가 몇 번이나 노트북 화면 위를 움직였다. 잠시 뒤 노트북을 닫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 후련한 표정을 하고 기지개를 킨 코토리가 말했다. “으음, 끝났다. 우미쨩은?”“저도 이제 막 끝났습니다.” 우미도 노트북을 닫고 ..
험담[險談]:남의 흠을 찾아내어 하는 말. “어째서 요하네님이 즈라마루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거야.” 요시코는 불만스러운 듯 이야기 했지만, 친구에게 부탁을 받은 것이 나름 기뻤다. 누군가 자신에게 의지를 해준다니 실로 리얼충스럽지 않은가. 방과 후 도서정리를 도와 달라는 간단한 부탁. 오늘은 스쿨아이돌 연습도 없기에 곧장 도서실로 향했다. “즈라마루 이 몸이 도와주러 왔어. 어라? 없잖아.” 텅 빈 도서관은 요시코가 기다렸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요시코의 목소리만이 맴돌았다. 아직 안온건가. 즈라마루 먼저 말했으면서 도서관에는 없다니, 살짝 볼을 부풀리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간 요시코는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책을 보며 살짝 후회했다.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정리해야 하는 책들을 뒤로하고 도..
아야세 에리는 아침에 약하다.학생 때는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매우 힘들어졌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핸드폰 알람이 거슬려진다. 평범한 벨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불쾌함이 느껴진다. 몇 번이나 핸드폰을 던질 듯한 충동이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핸드폰 가격을 생각하면 잠과 동시에 불쾌감도 달아난다. 오늘도 지끈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벗어나 세면을 한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나면 약간의 두통이 가라앉고 안개가 서린 것처럼 흐리멍덩한 의식 또한 조금씩 돌아온다.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고 거울 안에 있는 자신을 바라본다. 호수와도 같이 푸른 눈동자에는 빛이 돌기 시작하고 굳어 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오늘 하루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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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이 내려쬐는 한 여름. 여름하면 역시 수영장. 수영장에서 다 같이 즐겁게 노는 건 여름의 필수코스이다. 이번 여름 주말에도 모두와 같이 수영장에 가기로 했을 터이다. “호노카, 일단 수영장에 오긴 왔는데...노는 게 아니라 청소를 하는 거구나.” 교내에 있는 물이 빠진 수영장 안에 서있는 호노카는 주변을 둘러봤다. 벽 주변에 붙어 있는 물 때, 햇빛에 달궈진 바닥, 조금 남아 있는 물기. 수영장에 있는 것은 호노카 뿐이었다. 학생회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당당하게 수영장 청소를 한다고 했는데, 너무나도 섣부른 선택이었다. “코토리쨩. 우미쨩...” 코토리쨩과 우미쨩은 둘 다 일이 있어서 오후에나 온다고 했고, 학생회의 일이니 다른 멤버들은 부르지 않았다. 청소용 솔을 들고 서있는 호노카는 고개를 ..
“심심하다냐.”“집중해.” “아얏, 아프다냐.” 넓은 방안 원형 책상을 펼쳐 놓고 그 위에는 각종 문제집과 노트가 늘어져 있었다. 린은 방금 마키에게 맞은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졌다. 마키는 영 집중하지 못하는 린을 보며 말했다. “먼저 공부 하자고 한건 너잖아.” “그렇지만...심심한건 어쩔 수 없다냐.” 정말이지 고등학생이 맞나 싶을 정도다. 얼마 전 본 쪽지시험에서 아슬아슬한 점수를 받아. 선생님께 한 소리 듣고 시무룩 해졌으면서 변한 게 없다. 그 뒤에 공부를 하자냐. 라고 외쳤고, 마키에게 달라붙어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해서 이렇게 집에까지 초대해 공부를 시작했는데 시계를 보니 고작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전 과목이 고루고루 약해서 일단 가장 약한 수학부터 봐주기로 했는데, 역..
여우비.맑은 날에 잠깐 내리는 비이다. 옛 이야기에서는 여우를 사랑한 구름이 여우가 시집가자 너무 슬퍼 우는 비를 여우비라고 했다고 한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없었기에 당연히 우산 또한 준비 하지 않았다. 여우비가 내리는 한 낮에 호노카는 비를 피하기 위해 거리를 달리고 있었지만, 도무지 비를 피할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다.수업을 마치고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 바구니를 품에 안고 걸음을 재촉하던 도중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해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얼른 그쳤으면 좋겠는데.” 발을 동동 굴러 보지만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제쯤 그칠까, 원망스러운 눈으로 하늘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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