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맞춰 놓은 시간대로 알람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듣지 못한 것으로 하고 싶었지만, 매정하게도 알람 소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재촉에 마키는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어 평소보다도 강하게 시계를 내려쳤다. “가기 싫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 찾아왔다. 어제 침대에 누우면서도 오지 않을 꺼라 생각을 했지만, 막상 아침이 다가오니, 뭔가 허무했다. 좀 더 절망적인 느낌일줄 알았는데, 왠지 아직까지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잠이 덜 깨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아래에서 들려오는 아침밥이 다되었다는 마마의 목소리에 내려갈게, 라고 짧게 답한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대충 정리하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마키쨩, 어서 자리에 앉으렴.” “파파는?” “아침..
비 가 오는 날, 다 허물어져 가는 종이 상자 안에 있는 작은 아이, 주황색으로 빛나는 털은 물에 젖어 색을 잃어 버렸고, 꼬리와 귀는 기운 없이 쳐져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상자 안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저 추위에 떨고 있는 시선을 돌려 버린다면 곧 사그라들어 버릴 것 같은 작은 생명의 불꽃을 무시 할 수 는 없었다. 정말이지 모질지 못하다. 겉옷으로 작은 아이를 감싸 조금이라도 날아 들어오는 비바람을 막아주려 했다. 으으응, 자그마한 신음소리가 옷가지 안에서 새어나왔다. 힘 없는 저항이 느껴졌다. “조금만 참아.” 말을 알아들었는지, 신음소리와 저항이 줄어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비바람이 거세졌다. 정말로 제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 날이네, 하늘을 향한 빈정거림을 듣기라도 한걸까, 빗방울이 더욱..
핸드폰 진동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누구일까 생각 할 필요도 없었다. 화면에는 에릿치~♡ 라는 문자가 떠올랐다. 역시나 에리다. 아마도 오늘 만나는 것 때문에 전화를 한 것 이 분명 하다. “와 전화했나?” “글쎄? 노조미의 목소리를 좀 더 빨리 듣고 싶어서 일까.” “역시 말은 번지르르하구마.” “그래, 조금있다가 만나.” “에릿치나 늦지말레이.” 통화를 끝내고, 나갈 준비를 마저 한다. 어떤 옷이 좋을 까, 한참을 고민하다. 에리가 어울린다고 해준 보라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첫 데이트 때 입었던 옷, 에리가 몇 번이나 예쁘다고 해준 옷이기에 가장 마음에든 옷 중 하나이다. 역시 이게 좋겠다. 옷을 갈아입고 위에 받쳐 입을 코트를 꺼낸다. 콧노래를 부르며, 데이트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데이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