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주 평범했다. “니콧치.” “왜 불러?” 평소와 다름없이 부르는 노조미의 목소리에 건성으로 대답해 줬다. 이번에도 별거 아니겠지, 아니면 단순히 장난치려는 거나,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며, 아이돌잡지를 보고 있을 때 노조미가 말했다. 평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듯이. “내 니콧치를 좋아하나보다.” “그래. 니코도 니코가 좋아.” “그러니 사귀자.”“그래...응?”“참말이지!! 그라믄 오늘부터 시작하는기다.” 이렇게 얼떨결에 사귀게 돼 버렸다. 당황해서 노조미에게 이런 식으로 사귀는 건 좀 그렇다고 말했지만, 이내 눈물을 글썽이며 니콧치는 내가 싫은기가? 그런기가? 내는 니콧치를 참말로 좋아하는데,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물론 노조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은 아주 사소 한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그날 니코와 마키가 다툰 이유도 작은 이유 때문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니코는 스케쥴 체크를 하고 마키는 병원에 갈 준비를 한다. 후덥지근한 여름이 다가와 니코가 하는 일에는 점점 노출이 많아지게 됐다. 수영복 모델을 한다 던지, 아슬아슬한 옷을 입는다던지, 처음에는 마키 또한 니코의 일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고, 몇 번이나 니코에게 넌지시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마다. 니코는 알겠어, 노력해 볼게, 라는 말로 확답을 회피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마키였지만, 니코를 믿으며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준비를 하던 도중 책상 위에 올려 진 니코의..
그것은 둘만의 약속이었다. 에리가 졸업을 하던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눈물을 흘리던 호노카에게 손을 내밀어 눈물을 닦아주며 건네준 것이 있다. 딱딱한 금속의 감촉에 손을 펴보았다. 그것은 열쇠였다. 의문을 가득품은 눈동자로 에리를 바라보았다. “에리쨩 이게 뭐야.”“그게...4월부터는 혼자 살게 됐어. 거기의 집 열쇠야.” “엣?” 에리는 창피한 듯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피했다. 에리의 집 열쇠를 바라보자,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손에 들려 있는 열쇠를 강하게 쥐며 에리에게 말했다. “에리쨩.”“왜 호노카?” “나 에리쨩이 있는 학교에 갈게.” “응?” 당황한 듯한 에리쨩의 얼굴은 아직도 잊을 수 가 없었다. 그때 살짝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이건 비밀로 묻어두고, 여자저차해서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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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 빛이 창문 너머로 들어온다. 어느새 완연해진 봄의 기운이 물씬 풍겨온다. 형형색색의 꽃들은 자신의 뽐내듯 아름답게 피어 있고, 새들은 다시금 나무 아래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갓 내린 커피 한잔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같이 올라온 향은 방안에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에리는 커피를 따른 머그컵을 들고 한 모금을 머금었다. 카페의 마스터에게 부탁해서 원두를 얻어 오길 잘했다 생각하며, 다시금 커피를 음미하려고 했을 때, 알람이 울려 퍼졌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시계 알람을 끄고 머그컵을 내려놓았다. 분명 봄은 좋은 날씨다. 따스해지고 주변이 저절로 아름다워 지는 계절, 그러나...에리에게는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왜냐하면 환절기도 같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얀 가운을 두르고 ..
평범한 주말 날씨가 너무나도 좋기에 이대로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잠시라도 숨을 돌리기 위한 산책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마당에 나와 내리쬐는 햇 빛을 받으며, 마당을 둘러보고 있을 때,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기껏 탈 수 있게 된 자전거인데 이대로 내버려두기에는 아까운 것 같았다. 햇빛에 반사 되어 붉은 색으로 빛나는 자전거는 어서 자신을 타달라고 조르는 아이 같이 보였다.“잠깐만 나갔다 올까.”자전거를 탈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청바지를 입고 져지를 걸친 뒤 모자를 쓰고 다시 나와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러면 가볼까.”살짝 겁이 났지만, 마키는 세차게 페달을 밟았다. 마키의 우려와는 다르게 자전거는 길가를 미끄..
영원히 친구 그 이상으로는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너의 옆자리는 이미 채워져 있었으니, 포기하기로 생각하였다. 내가 아닌 그녀가 있을 때 너는 진정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깐, 잠시 쉬는 시간, 화장실에 다녀오며 노조미의 반을 들여다보았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노조미의 자리는 오늘도 노조미에게 점을 보러온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노조미에게 운세를 묻고 노조미는 카드 점을 봐준다. 신사에서 무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봐주는 것은 타로카드 인 것이 항상 이상했지만 딱히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용하기도 하고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으니깐, 그때 노조미와 눈이 마주쳤다. 푸르른 녹색 눈동자를 보자 주변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창문 너머에 있는 노조미와 점점 가까워져 ..
“아, 정말이지 이렇게 보이는 곳에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앙칼진 니코의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매웠다. 에리는 고개를 숙이고 니코에게 미안하다고만 말 할 뿐이었다.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니코의 새하얀 목덜미에 붉게 올라온 이빨 자국을 가리키며 에리에게 화를 냈다. 이 상처는 에리의 버릇 중 하나였다. 절정에 이를 때가 되면, 항상 목덜미라던가 신체 부위를 물어 상처를 내고 만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회사 미팅이 있는 날이다. 침대에 눕기 전에도 몇 번이나 에리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달라고, 에리는 자신만만하게 알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목덜미에 남은 상처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으으, 미안해...니코.” “한 달 동안 에리랑은 손도 안 잡을 거야..
사랑은 언제나 뜨겁지 않다. 때때로 어느 것 보다도 차가워 질 수도 있는 감정이다. 언제 부터였을 까, 우리 둘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마키가 말했다. “같이 살지 않을래?” 의대로 진학을 하게 된 마키는 학교 근처에 원룸을 구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어 말한 듯 떨고 있는 마키를 보고는 미소를 짓고, 그러자고 하였다. 처음에는 서로의 생활패턴이 너무나도 다르기에 다투기도 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바탕 거사를 치루고 난 뒤, 서로에게 사과를 하고는 여러 가지를 조정하였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니코&마키 결의서이다. 몇 번이나 수정 된 흔적이 보이는 너덜너덜 한 종이를 보며, 니코는 한 숨을 쉬었다. 시간이 흘러, 마키는 당연한..
어느 왕국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탐스러운 보랏빛 머리카락, 에메랄드를 세공해 넣은 듯한 옥 빛 눈동자는 한 번이라도 본 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를 매혹시켰다. 그녀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번져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왕은 그녀를 잡아 오라 명령을 내렸다. 왕이 명령을 내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왕의 앞에 서게 되었다. 낡은 회색 망토로 몸을 가렸지만 망토 넘어로 보이는 굴곡을 본 왕은 침을 삼키며 말했다. “망토를 벗 거라.” “...”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어서 망토를 벗어라!” “감당 할 수 있겠나?” “뭐?” “네 모습을 보고 나서도 감당 할 수 있냐고 물은기다.” 건방진 태도에 어전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고, 그녀 주위에 있는 병사들은 당장이라도 검을 빼들어 여인을 공..